9. 중앙산악지역
사무엘의 두 아들인 요엘과 아비야가 브엘세바에서 사사가 되었으나 그 행위가 아버지 사무엘과 같지 않고 뇌물을 취하고 판결을 그릇되게 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모든 장로가 왕을 세워 다스리기를 간청함에 사무엘을 통해 하나님께서 왕을 세우도록 허락하여 이스라엘의 왕정이 시작되는 계기가 되었다.(삼상 8:1-9)
주전 9-8세기에 건축된 신전이 있었으며 현재에도 언덕중심에 제단과 돌로된 뿔단이 남아 있다.
현재 텔 브엘세바에서 볼 수 있는 것은 대부분 옛 이스라엘시대인 주전 12-8세기경의 유적이다. 텔 브엘세바에 사람이 거처한 흔적으로는 주후 3세기경의 로마시대가 마지막이었다.
[12] 기브아 (Gibeah)
  예루살렘성의 다메섹문에서 북쪽의 세겜으로 가는 길을 따라 약 6km 지점의 오른편 산 정상에 큰 건물이 건축하다가 중단된 상태로 보인다. 건설도중 중단된 건물은 1967년 6일전쟁 이전에 요르단 후세인 왕(king Hussein-Abdullar 1세,1999년2월 사망)이 그의 별장으로 건축하다가 이스라엘에게 점령되어 중단되었다. 현재 그곳의 이름은 텔 엘 풀(Tel el Ful) 이다.
기브아라는 이름은 히브리어로 “산”또는 “언덕”이라는 뜻이다. 이곳은 베냐민 지파의 성읍으로 사울왕의 고향이자 이스라엘의 첫 번째 왕국의 수도였다.(삼상 11:4, 15:34)
동으로는 와디 파라, 서로는 소렉 골짜기가 위치하여 에브라임 산지에서 예루살렘으로 향할 때 병목지역으로 전략적 요지이다.
사울왕은 블레셋 군대와 싸울 때 기브아에 요나단의 병력 1천명을 배치했다.(삼상 13:1-2)
사울왕은 놉에 있는 제사장들을 기브아로 불러 다윗과 공모하여 대적한다는 이유로 85명을 죽이고 그 가족을 다 죽였다.(삼상 22:18-19) 놉은 현재 히브리대학교가 위치한 스코프스산 지역일대이다.
기브아는 유다왕 아비야의 모친 미가야의 고향이기도 하다.(대하 13:1-2)
호세아 선지자는 북 이스라엘을 향하여 기브아의 시대와 같이 심히 패괴한지라 여호와께서 그 악을 기억하시고 그 죄를 벌하시리라(호 9:9) 경고하며 기브아를 상기 시켰다.
기브아 정상에서 세겜쪽으로 내려다 보이는 큰 마을이 사무엘의 고향인 라마(Rama)이다.(삼상 1:19-20)
라마의 가까운 북편에 경비행기의 이착육이 가능한 예루살렘 비행장이 있다. 이 비행장은 6일전쟁 이전에 요르단 후세인왕이 예루살렘의 황금사원을 방문할 때 사용 되었다.
비행장에서 북쪽으로 예루살렘에서 약 12km 지점에 사울을 왕으로 세운 “미스바” 가 위치해 있다. 미스바는 온 이스라엘이 모여 국민대회를 열고 금식기도로 죄를 고백한 신령한 집회소였다(삼상 7:3-11). 지금은 텔 나즈바(Tel Nazba)라고 하는 곳이다.
미스바에서 북쪽으로 약1,5km, 해발 870m지점에 위치한 아랍도시인 라말라(Ramallah)는 팔레스타인의 자치정부가 있는 핵심 도시중의 하나이다.
[13] 기브온 (Gebeon)
  예루살렘의 북서쪽으로 10km 지점, 기브온 산당에 네비사무엘이 위치하고 있다.
옛 기브온은 현재 엘집(El Jib)이라는 곳과 네비 사무엘이라고 하는 두 곳이 있다.
보통 기브온이라고 하면 엘집을 말하고 성경에 나오는 기브온의 산당이 있던 높은 곳은 네비 사무엘을 말한다.
이곳은 베냐민 평지 남쪽 경계지역으로 해안으로부터 벧호론 능선길로 올라가는 베냐민 평지의 첫 관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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