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성 가족의 피난 노정
수도원 전경
성 가족은 다이루트(Dairut)를 거쳐 나일강변에 가까운 소도시인 엘 쿠세아(El Qusiya)에 도착하였다. 성 가족이 이곳에 이르렀을 때 마침 마을에 결혼식이 있었는데 신부가 귀신들려서 벙어리처럼 바보가 되어 있었다. 그 신부가 아기 예수께 달려가 입을 맞추니 귀신이 물러가 금방 온전해져서 하나님을 찬양했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성 가족은 엘 쿠세아에서 내륙으로 약 3km 지점의 오늘날 엘 무하라크 수도원이 있는 코스캄산(Mt. Qousqam)의 기슭에 도착하였다.
요셉은 그곳에 종려나무와 진흙으로 작은 집을 지었다. 집 근처에 있던 우물은 예수님의 축복을 받았다. 예수님께서는 병과 더러운 악령들에게 시달리는 근처에 사는 많은 사람들을 낫게 하는 이적을 행하였다.
마리아기념교회
그 후에 이스라엘로 부터 요세(Joses)라는 사람이 이곳에 와서 성 가족에게 고하기를 “헤롯”이 동방박사들에게 속았음을 알았을 때 몹시 격노하여 사람을 보내 베들레헴 근처에 있는 두 살 박이 사내 아이들을 전부 죽였다고 했다. 그때에 예수님은 이스라엘에서 온 요세에게 감사하며 그의 조상들인 성자들과 함께 잠들것이라고 했다.
그 후 요셉은 요세가 죽으매 그의 무덤 앞에 사각형의 돌 위에 “성 가족이 코스캄산에서 잠시 머물렀다”고 새겨서 세웠다. 요세의 무덤은 수도원의 성모 마리아 교회 밖의 남서쪽 모퉁이에 있어 오늘날 까지 전해지고 있다.
콥틱 성경
헤롯이 죽은 후에 주의 사자가 애굽에서 요셉에게 현몽하여 가로되 일어나 아이와 그 모친을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가라 아기의 목숨을 찾던 자들이 죽었느니라 하였다.(마 2:19-20)
성 가족이 이곳을 떠나기 전에 마리아는 예수께 약 6개월 동안 가족의 피난처가 되었던 작은 집을 축복하기를 부탁했다. 그래서 그곳은 이사야의 예언 “나의 백성 애굽이여 복이 있을지어다(사 19:25)” 라고 말씀한대로 나사렛, 예루살렘, 베들레헴과 모든 성지들 처럼 명예와 명성을 얻었다.
성 가족이 수도원의 자리에 방문한 것을 기념하여 히브리어로 새겨진 옛 비석이 세워져있다.
성 가족이 이곳에서 약 6개월간 머믈러 있던곳에 성모 마리아 교회가 세워져 있다. 이곳이 이집트의 가장 중심이 되는 이집트의 배꼽이 되는 곳이라고 안내 수도사가 설명해 주었다.
이 성모 마리아교회의 성전 안에서 수도사들이 새벽 4시부터 약 3시간 동안 카톨릭과 유사한 예배의식이 복잡하게 행해지고 있었으며, 다른 지역에 있는 4개의 수도원은 통상 새벽 5시부터 약 2시간의 예배가 진행 되고 있음을 직접 예배시에 참관하여 관심을 가지고 볼 수가 있었다.
성 가족이 다시 이스라엘 땅으로 돌아 갈때의 노정은 올 때에 머믈렀던 곳을 대부분 되짚어 되돌아 갔을 것으로 짐작된다.
수도원 지역의 성채의 탑(Tower)은 제논왕(Xenon, 주후 474-491년)에 의해 로마 요새 형태로 세워졌는데 이방민족이 자주 공격해 왔기 때문에 이에 대비하기 위해서 세워졌다.
지금의 수도원 담벽의 석조 벽돌은 주후 1901-1928년에 건축되었으며 일반 문과 특별 문의 두개의 이중문으로 튼튼히 설치 되었다.
[8] 엘 테이르 (El Tair)
나일강을 따라 남쪽으로 내려가다 보면 주변에 유적들이 많이 있다. 성 가족은 올드 카이로에서 배편으로 떠나 사마루트(Samalut)를 거쳐 엘 테이르(Dier Gabal el Teir)에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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