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성 안토니 수도원과 성 바오로 수도원
성 안토니교회
그런데 어느날 성경의 마태복은 19장을 읽게 되었다.
성경에 그 청년이 가로되 이 모든 것을 내가 지키었사오니 아직도 무엇이 부족하니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하시니 그 청년이 재물이 많으므로 근심하며 갔다.(마 19:20-22)는 성경 말씀이 자기에게 말씀하시는 것으로 생각되어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자기의 많은 재산을 팔아서 가난한 자에게 나누어주고 광야의 산 속에서 20여년 동안 은둔생활을 했다. 그에게 한 누이가 있었는데 그녀도 수녀원에 보내졌다.

초기 기독교의 동방정교회에서 혼자 광야에 나가 숨어서 은둔의 생활을 많이 했는데 이들을 은수사라고 부른다. 주후 305년 안토니는 은수사들을 모아 은수사원을 세우고 수도복을 입게 하였는데 이것이 수도원의 효시이다. 그후 4세기 중엽 알렉산드리아의 주교 아다나시우스는 수도원의 규칙을 제정하여 체계화하였고 파고미우스는 이것을 발전시켜 수도원 주위에 담을 쌓아 세속과 단절시켜 금역제를 만들었다. 성 안토니수도원은 흙돌담벽을 높이 10m로 쌓았다.
성 안토니수도원 정문
이집트의 모든 수도원은 외부로부터 습격을 받지 않도록 높은 담 벽을 튼튼히 쌓고 아주 작은 출입대문을 달아 안에서 잠그면 밖에서 파괴가 불가능하도록 완벽하게 문이 제작되어 있다.
본래 수도원으로 들어가는 출입문이 없어 성벽위에서 바구니로 사람을 실어 올리고 내렸다고 한다.

8. 성 안토니 수도원과 성 바오로 수도원

성 안토니는 주후 311년 기독교에 대한 박해가 심할 때 알렉산드리아에 가서 신도들을 격려하고 많은 기적을 보여주어 "황양의 별"이라는 말을 들었다. 그는 나이 61세가 되던 주후 312년에 지금의 성 안토니 수도원의 뒤에 있는 콜줌산(Mt. Kolzoum)의 높은 지역에서 자연 동굴을 발견하고 그곳에서 수도생활을 시작했다.
지금의 수도원 안에는 사철 끊임없이 흘러내리는 천연 샘물(Water Spring)이 있다. 이 샘물 때문에 이곳에는 정원이 있고, 대추야자의 숲도 있다. 성 안토니는 동굴에서 수도하다가 내려와서 목이 마르면 물을 마시고 근처에서 대추야자의 열매를 따서 먹으며 수도생활을 했다고 한다.
그가 길러낸 제자들이 많이 있는데 그 가운데 성 아다나시우스(St. Athanasius)를 비롯하여 성 마카리우스(St. Macarius), 씨릴(Cyril), 성 아마타스(St. Amatas)등이 있다.

수도원 안에는 성 안토니교회를 비롯하여 사도들의 교회, 성 마가교회, 성 마리아교회, 성 바오로교회 등 일곱개의 교회와 도서관이 있다.
성 안토니교회는 주후 15세기말 베두인들이 습격하여 수도사들을 전부 몰살시키고 수도원을 점령하여 이 교회를 부엌으로 사용했기 때문에 시커멓게 그을러졌고 이때에 수도원에서 소장하고 있던 진귀한 성경사본 등 많은 자료들이 유실되었다고 한다. 현재의 도서관에는 1,600여 점의 장서가 소장되어 있다.

수도원 뒤의 콜줌산의 정상 가까이에 있는 기도동굴에 관심을 갖게 된다. 성 안토니(주후 312-356년)는 이곳 동굴에서 약 44년간 수도생활을 했다.
산의 높이가 약 300m라고 하지만 올라가는데 위험한 곳도 있어 로프줄의 난간이 설치되어 있고 수통의 물을 자주 마시며 올라가야 하는 제법 높은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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