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중앙산악지역
그때 아합왕과 왕비인 이세벨은 엘리야를 죽이려고 하므로 이때에 그들에게 쫓겨 브엘세바로 도망가다가 이 곳에서 쉬었다고 하여 기념교회를 세웠다.(왕상 18:19-40)
[8] 탄투르 (Tantur)
엘리야 기념교회에서 베들레헴 방향으로 약 500m 지점의 도로 오른편 언덕에 자리잡고 있는 건물이 탄투르이다.
이곳은 모든 교파의 신학자들이 모여 연구하는 아카데미기관이다. 매주 토요일에는 모여 예배드리고 성지순례도 한다.
주후 1963년 바티칸 공회에 업저버로 참석했던 오스카 쿨만 등 개신교 신학자들이 바울6세 교황에게 개신교, 천주교, 정교회의 학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대화하며 연구할 수 있는 장소 마련을 건의했다. 이 건의가 받아들여져 교황의 주선으로 예루살렘 탄투르가 문을 열게 되었다.
그후 1971년, 신학연구소(Ecumenical Institute for Advanced Theological Studies)로 발족되었다.
탄투르의 도서관에는 신학에 관한 도서가 30,000권이나 장서 되어 있어 많은 신학자들이 도서관을 찾고 있으며 한국의 뜻 있는 신학교수, 목사 그리고 신부들이 종종 들리는 곳이다.
[9] 헤브론 (Hevron)
  예루살렘에서 남쪽으로 약 37km, 브엘세바에서 북쪽으로 약 48km 지점, 해발 950m의 고지대에 위치한 현재 아랍회교인들의 도시이다.
1967년 6일 전쟁시 이스라엘 점령지로서 가자와 세겜 다음으로 큰 도시이다.
헤브론은 주전 2000년 전부터 사람이 거주한 흔적이 있고 세계에서 먼저 건설된 도시중의 하나로 애굽의 유명한 “소안”보다도 7년이나 먼저 건설되었다.(민 13:22)
막벨라 굴 위에 세워진 회교 사원
주후 1100년 십자군에 의해 탈환되면서 베들레헴에서 십자군 초대 왕 볼드윈1세(BaldwinⅠ)의 왕위 즉위식이 거행되었다. 베들레헴에서 즉위식을 가진 것은 예수께서 가시면류관을 쓰신 예루살렘에서 인간의 왕이 황금면류관을 쓸 수 없다는 이유에서 였다.
베들레헴의 중심 시가에 접어들어 구유광장(Manger's Square)이라 부르는 넓은 광장을 지나 탄생교회의 입구에 도착하게 된다. 교회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높이가 120cm 폭이 80cm 밖에 되지 않는 좁은 돌문이 설치되어 있다.
지금은 헤브론 언덕에 1970년에 새로 건설된 유대인 마을을 “기럇아르바”(Kiryat Arba)라고 하여 아랍인이 거주하는 헤브론과 구분하고 있다.
현재 아랍인들은 헤브론을 베이트 엘 칼릴(Beit el Khalil)이라 부른다. 그들은 “하나님의 친구”를 엘 칼릴, “동네”를 베이트라는 뜻으로, 하나님의 친구인 아브라함이 살던 동네라 하여 베이트 엘 칼릴이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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