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중앙산악지역
[16] 벧세메스 (Beth Shemesh)
예루살렘에서 소렉골짜기의 산지를 따라 개척된 도로로 갈수도 있으나 예루살렘에서 텔아비브로 가는 1번 국도 약 25km 지점의 십자교차로에서 좌회전하여 에스다올(Eshtaol)을 거쳐 약 4km 정도가면 도로변에 성경에 기록된 벧세메스의 유적이 있다.
벧세메스는 히브리어로 “태양의 집”(The city of Sun)이라는 뜻이다. 이곳에서 발굴된 도자기로 보아 주전 2,000-600년까지 주민이 살았으며 견고한 요새였으나 마침내 느부갓네살 2세의 군대에게 멸망되었다.
지금까지의 유적은 대부분 비잔틴시대의 것이다, 그 이전에 삼손이 태어났고 그의 무덤이 있는 “소라”는 에스다올과 벧세메스의 중간의 길 서쪽에 있는 산 정상지역이다.(수 15:33, 삿 13:2)
사사시대 말기 엘리 제사장때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실로에서 가져다가 법궤를 빼앗겼는데(삼상 4:11) 그후 에그론에서 일곱달만에 벧세메스로 돌려 받았다.(삼상 6:1-16)
이스라엘의 요아스왕이 유다왕 아마야를 사로잡은 곳이다.(왕하 14:13, 대하 25:23) 그리고 이곳에서 차를 타고 남쪽으로 10여분정도 가면 다윗과 골리앗이 싸운 엘라골짜기가 나온다.
[17] 기럇여아림 (Kiryat Yearim)
  예루살렘에서 텔아비브로 가는 1번 국도상의 약 13km 지점에서 우회전하여 약 2km 들어가면 도로를 중심으로 왼편마을이 기럇여아림이고 오른편 언덕 아랫마을이 아브고쉬이다.
기럇여아림은 “산림의 마을”이라는 뜻이다. 기럇여아림은 유다지파에게 준 땅이며 “바알레 유다”라고도 불렀다.(삼하 6:2)
여호수아가 가나안 땅을 정복할 때 여호수아에게 나아와 화친한 네 성읍중 하나이다.(수 9:3-18)
기럇여아림 기념교회
기럇여아림 마을의 입구에서 왼편으로 올라가면 마을에서 제일 높은 곳에 불란서 수녀원이 있다. 이 수녀원 안의 기념교회는 블레셋에게 빼앗겼던 법궤를 벧세메스에서 기럇여아림으로 옮겨와 20년 동안 보존해 두었던 기럇여아림의 아비나답의 집터(삼상 7:1-2) 위에 세워져 있다.
다윗이 이 법궤를 바알레 유다(기럇여아림)에서 옮겨 오벧에돔의 집에 3개월 보존한 후 다윗성으로 옮겨갔다.(삼상 6:1-15, 대상 13:5-8)
현재 수녀원 안에는 주후 2세기경의 로마시대에 세워졌던 건물의 유적이 남아 있으며 모자이크 바닥을 볼 수 있다. 주후 5세기경의 모자이크 바닥이 교회 제단 앞에 남아 있다.
주후 6세기경 비잔틴시대의 유스티니안 황제에 의해 세워졌던 교회유적과 십자군시대 교회의 유적도 볼 수 있다.
이곳의 교회지붕 위의 정면에는 아기예수를 안은 마리아 상이 조각되어 예루살렘을 향하여 바라 보도록 세워져 있다.

아브고쉬(Abu Ghosh)는 기럇여아림의 아랫마을이다. 이곳은 예수님이 부활한후 엠마오로 가던 두제자를 만난곳의 후보지이다.
아브고쉬는 예루살렘으로부터 약 25리가 된다. 원래 이곳은 히브리어식 발음으로 “카리엘 엘 에나브”라 칭했다. 아랍어식 발음으로는 “키리앝 에아림”이라 불렀다.
그러나 19세기 초엽부터는 이곳을 지나가는 여행객으로부터 금품을 강탈했던 산적두목의 이름을 따서 아브고쉬라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므로 아브고쉬는 인접한 기럇여야림과 동일지역의 개념으로 볼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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