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중앙산악지역 |
아이성 내의 가나안 백성은 모두 12,000명이었다. 1차 아이성 전투시 이스라엘은 불과 3,000명으로 이들을 대적한 셈이다. 패전할 것은 뻔한 이치였다. 그러나 2차 전투에서는 1차보다 무려 10배가되는 30,000명을 투입했다. 이제는 숫적(數的)으로도 아이성 백성은 더 이상 버틸 수 없게 되었으며 더욱 전술적인 면에서 매우 타당한 전쟁원리에 의해 승리할 수 있었다.(수 8:1-29)
아이성 전투의 그날에 아이사람 전부가 죽었으니 남녀가 12,000명이 었고,아이왕을 저녁때 까지 나무에 달았다가 해질때에 명하여 그 시체를 나무에서 내려 그성문 어귀에 던지고 그 위에 돌로 큰 무더기를 쌓았더니 그것이 오늘날 까지 있더라(수 8:24-29)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으나 왕의 시체가 묻힌 확실한 장소는 어느 곳인지 알길이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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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믹마스 (Michmash)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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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에서 북쪽으로 약 11km지점에 위치하고 있는 지금의 묵마스 와디(Mukhmas wadi)에 있는 지역이다.(삿 10:28) 이 곳에서 골짜기 건너로 남쪽 언덕 위에 있는 베냐민의 게바(Geba)가 바라다 보인다.
사울은 3,000명을 모아서 2,000명을 자기와 함께 믹마스와 벧엘산에 있게하고 1,000명은 요나단과 함께 베냐민 기브아에 있게한 후에 남은 백성은 각기 장막으로 보냈다.(삼상 13:1-2)
요나단이 게바에 있는 블레셋 사람의 수비대를 치매 블레셋이 병거 30,000, 마병 6,000 그리고 백성을 많이 모아 벧엘 동편 믹마스에 진을 쳤다.
그러자 이스라엘 사람들이 위급함을 보고 절박하여 굴과 수풀과 바위들과 은밀한곳과 웅덩이에 숨으며 어떤 히브리인은 요단을 건너 갓과 길르앗땅으로 가되 사울은 길갈에 있고 그를 좇는 모든 백성이 떨고 있었다.(삼상 13: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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