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중앙산악지역
요나단은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일하실가 하노니 여호와의 구원은 사람의 많고 적음에 달려 있지 아니하였느니라”하였다. 그때 부하 소년은 “당신의 마음에 있는 대로 다 행하여 앞서 가소서 내가 당신과 마음을 같이하여 따르리이다” 하면서 순종했다.(삼상 14:6-7)
요나단이 블레셋 부대에게로 건너가려는 어귀사이 이편에도 험한 바위가 있고 저편에도 험한 바위가 있는데 하나의 이름은 보세스(Bozez)요 하나의 이름은 세네(Seneh)였다. 지금도 믹마스 언덕에서 바라보면 골짜기 어귀 사이에 험한 바위 2개가 있는데 북쪽에 보세스, 남쪽에 세네로서 요나단이 블레셋을 치기위 하여 이곳을 건너간 지역이라 전해지고 있다.
요나단은 사울의 금령(禁令)을 어기고 부하 소년과 단둘이서 용감하게 블레셋진영에 침투 하여 20명을 죽이고 교란(攪亂)시켰다. 이스라엘은 적은 숫자 였지만 많은 블레셋군대는 지리멸렬(支離滅裂)하게 되자 격퇴 시키고 추격하여 승리했다.
[21] 실 로 (Shiloh)
 
유적 일부
예루살렘에서 북쪽의 세겜으로 가는 도중 약 38km, 벧엘에서 북동쪽으로 약 16km 지점, 높은 산이 둘러싸여 있는 중앙지역의 해발 379m의 고지대에 위치한 실로는 천연의 요새적 환경에 의한 교통의 요충지였다. 현재는 폐허의 유적만 남아 있다.

실로는 히브리어로 “안식의 장소”라는 뜻의 이름이다.
여호수아가 가나안 땅에 들어온 후 200여 년 동안 이스라엘의 거룩한 법궤가 머물러 있던 곳으로 종교적, 정치적 중심도시였다.(수 18:1, 18:8-10, 22:11-12) 사사시대에 베냐민지파의 남자들이 매년 “여호와의 절기”에 실로의 여인들을 아내로 취하여간 사건이 있었다.(삿 21:19-24)
가나안 정복을 마친 후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각 지파 대표 3명씩을 이곳 실로에 불러모아 영토 분배의 모든 계획을 제비뽑아 결정했다.(수18:1-10, 19:51)이스라엘의 마지막 사사이며 선지자와 제사장을 겸했던 “사무엘”이 실로에 있던 “엘리” 제사장 밑에서 자랐다.(삼상1장-3장)
법궤를 빼앗긴 아벡전투

블레셋과 에벤에셀(아벡)에서 싸울 때 실로에 머물러 있던 법궤를 가져다가 빼앗겼고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도 전사했다. 실로에서 그 소식을 들은 엘리 제사장은 의자에서 자빠져 목이 부러져 죽었다.(삼상 4:17-18)
그후 법궤는 일곱달을 블레셋 땅에 있다가 벧세메스로 돌아와 기럇여아림에 옮겨져, 20년간 보존되어 있다가, 다윗성으로 옮겨졌고, 빼앗긴 법궤는 실로에 돌아오지 않았다.(삼상 6:1-15, 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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