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중앙산악지역
[23] 사마리아 (Samaria)
 
사마리아인의 유월절 행사
예루살렘으로부터 약 72km, 세겜 북방 약 12km 지점, 해발 440m의 언덕 위의 동산에 사방의 계곡으로 싸여 있는 현재 세바스티아(Sebastia)라는 곳으로 보잘 것 없는 옛 마을이 되었다.
사마리아는 사마리아성을 포함하여 중부산간지방 전체를 사마리아 지방이라고 부른다.
아합왕의 아버지 오므리왕(주전 886-875)은 12년간의 재임중 북이스라엘의 수도를 디르사(6년간)에서 사마리아(6년간)로 옮겼다. 사마리아란 명칭은 오므리왕이 세멜이라는 사람으로부터 산의 부지를 은 두 달란트를 주고 산후 그 소유주의 이름을 따서 히브리어로는 “소므론” 희랍어로는 “사마리아”로 부르게 되었다.(왕상 16:23-24)

바실리카 유적
사마리아 지방은 여호수아가 가나안 땅을 정복할 당시 12지파 가운데 에브라임, 단, 므낫세 반지파에게 준 땅이 곧 예수님 당시 사마리아 지방이다.(수 16장-18장)
여로보암을 왕으로 삼아 북이스라엘 왕들이 250여년간 사마리아지방을 통치하였으나 주전 722년 앗수르왕 살말에셀에게 멸망 당하였다.(왕하 17:3-6)
그 후에 마케도냐 알렉산더대왕이 점령하여 사마리아인을 축출하고 자기 백성을 사마리아 지방에 들어오게 하니 자연히 2차에 걸친 외침으로 인해 혼혈족이 되어 버렸다.
그때부터 유대인들은 사마리아인을 이방시하였다. 또한 유대인들이 바벨론 포로에서 귀환하여 예루살렘 성전을 건축할 때 사마리아인이 방해하였고 일방적으로 그리심산에 성전을 건축하였다.(스 4:1-6)
이 두 가지 원인으로 유대인과 사마리아인간에 반목질시가 지속되었고 서로 상종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예루살렘에서 갈리리로 갈 때 가까운 사마리아를 통과하지 않고 멀리 요단강변길로 돌아다녔다.
헤롯왕이 축성한 성벽과 기둥

그러나 스데반의 순교 후 사마리아 지방에도 들어가 빌립, 베드로, 요한 등은 교회 설립의 기초를 만들었다.(행 8:1-25)
사마리아 성은 오므리왕과 아합왕을 거쳐 여로보암 2세 기간중 가장 전성기였으며 주전 722년 앗수르에 의해 멸망될 때 파괴되었다.(왕하 18:10-12)
사마리아지방이 로마의 통치아래 있던 주전 30년경에 로마의 아구스투스(Augustus)가 이 땅을 헤롯대왕에게 주었으며 헤롯은 이곳에 헬레니즘과 로마시대의 건축양식을 살려 웅장한 건축물을 많이 구축했다.
사마리아성의 왕궁의 화려함은 겨울궁, 여름궁, 상아궁, 큰궁 등의 엄청난 규모의 모습을 보아 알 수 있다 .(암 3:15, 6:4, 왕상 22:39) 오늘날 남아 있는 유적은 오므리왕과 아합왕시대의 방탄벽과 상아궁의 일부가 남아 있으며 3세기경의 희랍시대의 둥근탑, 로마시대의 원형극장 등 많은 유적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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