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스탄불

보스포루스 해협의 현수교

주전 7세기 중엽 그리스에 정복된 후 비잔티움(Byzantium)이라 불렀고 당시의 시가는 현재의 이스탄불 동쪽 모퉁이의 성벽에 싸인 돌출부에 위치한지역이다. 주전 512년의 페르시아의 다리우스1세에 점령되었다가 그후 로마의 지배에 들어갔다.

콘스탄틴1세(ConstantinusⅠ, 주후 306-337년)는 주후 306년 아버지가 죽자 황제에 추대되었다가 312년에 정식 황제에 오르게 되었다. 콘스탄틴 황제는 313년 밀라노에서 밀라노 칙령을 공포하고 신앙의 자유를 허용 하여 이때부터 기독교에 대한 핍박과 순교의 시대가 끝나고 새로운 기독교의 시대가 개막되었다.
그리고 325년 니케아에 종교회의를 개최하는 등 교회의 분쟁, 교리의 논쟁에 적극 관여했다.
그는 비잔티움의 성벽을 확장하고 새로운 도시로 건설, 티베레 강변의 로마를 본 따서 로마의 시가지와 마찬가지로 7개의 언덕과 14개의 시구(市區)로 구분하고 건물의 대부분은 로마의 원형을 모방하여 건축했다.
콘스탄틴 황제는 이곳을 수도로 하여 비잔티움을 콘스탄티노플이라 명명했다.(330년) 로마제국이 동서로 분열된 후(395년) 동 로마의 비잔틴 제국의 수도인 콘스탄티노플은 서 로마제국이 멸망하자(476년) 콘스탄티노플은 동방정교회의 가장 중요한 기지가 되어 동방정교회(Eastern Orthodox church)는 카톨릭, 개신교와 함께 기독교의 3대 기둥의 하나가 되었다. 또한 비잔틴 문화의 중심지로 번영하였고 동서문화의 교류에 큰 역할을 하였다.
주후 1204년에 십자군에게 점령되어 약 반세기동안 지배를 받다가 1264년에 미카엘 8세가 탈환했으나 비잔틴 시대는 기울어져 갔다.
  주후 1453년에 오스만 투루크의 술탄 메메트2세(Mehmet Ⅱ)는 동 로마의 비잔틴제국을 함락시킴으로 주후 339년부터 1123년간의 비잔틴시대는 끝이 났다. 이때부터 기독교의 여러 교회를 이슬람 사원으로 개축하고 기독교 중심의 콘스탄티노플이 이슬람 국가 중심의 수도로 변하여 이스탄불이라 부르게 되었다.
이스탄불이란 “이슬람교도가 많은 도시”를 뜻한다고 하나 분명치 않다.
이곳이 이슬람 문화의 중심지로 변화하자 동 로마의 학자, 문인들이 이탈리아로 피해가서 서유럽의 르네상스의 꽃을 피우게 하는 원인이 되었다.
이슬람 세계의 정치, 경제, 문화의 최대 중심지로 슐레이만1세(1520-1566년)때에 황금시대를 이루었다.
19세기 후반이후 발칸 문제를 둘러싼 열강의 분쟁지가 되어 자주 전화를 입었고 터어키가 제1차 세계대전시 독일 쪽에 참전하여 대패한 후 1918-1923년까지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의 연합국 지배하에 있다가 1923년 10월에 앙카라(Ankara)를 수도로 하여 터어키공화국이 건설되었다. 따라서 이스탄불은 약 1600년 동안 이어온 수도의 지위를 상실했지만 오늘날 경제, 문화적으로 여전히 터어키의 중심지로 번영하고 있다.

블루모스크 사원

이스탄불에는 그리스, 로마, 오스만 터어키시대에 이르는 많은 유적이 있다.
비잔틴시대의 건축 예술의 백미(白眉)라고 할 수 있는 소피아 대성당(Sancta Sophia)은 주후 537년 유스티니안 황제에 의해 세워졌다. 건축 왕이라 불려진 당시 황제는 베들레헴의 예수님 탄생교회와 시내산의 성 케더린 수도원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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