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밀레도 (Miletus)
밀레도 야외 원형극장
소아시아 서해안의 무역항구로 이오니아에서 에베소 다음가는 중요한 도시로 번성했었다. 고대에는 마이안도로스 강이 흘러 나오는 만내(灣內)의 돌출한 곶(串)에 건설된 항구도시였으나, 지금은 해안에서 내륙으로 9km 지점에 위치한 폐허의 유적지로 남아 있을뿐이다.
이곳은 에베소에서 육로에 의해 출발하여 쇠케를 경유하여 1시간이 소요되는 거리이다. 그러나 성지순례자들의 발길이 뜸한 곳이기도 하다.
바울이 마지막 전도여행을 하는 중 예루살렘으로 가기 위하여 이곳에 기착하였다. 이때에 에베소 장로들을 청하여 권면하였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는다. 지금은 너희가 다 내 얼굴을 다시 보지 못할 것이라는 마지막 고별인사를 한 다음 저희와 함께 무릎을 꿇고 기도하니 모두 크게 울며 바울의 목을 안고 입을 맞추고 다시보지 못하리라 한 말을 인하여 더욱 근심하고 배에 까지 전송하였다.(행 20:13-38)
밀레도의 성지순례를 마친 후 성경에 접하여 바울의 마지막 밀레도의 고별사(행 20:13-38)를 읽을때에 누구든지 밀레도의 유적들이 눈에 선하게 보이면서 눈시울이 적셔질 것이다.
밀레도는 주전 8-7세기까지 이오니아 중심지로 해외무역이 번성하였고 동 지중해와 흑해 연안에 70여곳의 식민시(Emporia, 상업거래소)를 두기도 했다.
동방무역의 활성화로 오리엔트의 풍부한 경험적 지식정보를 받아들이므로 이오니아 자연 철학자를 탄생케 하여 최초의 기하학을 정립한 철학자 탈레스(Thales)를 비롯하여 아낙시만드로스 (Anaximandros), 아낙시메네스(Anaxmenes), 헤카타이오스 (Hekataios) 등 밀레 투스 학파의 철학자를 배출하여 문화의 중심지를 이루었다.
주전 6세기 중엽 페르시아의 지배하에서 번영이 되기는 했으나 주전 499년 이오니아 반란의 중심이 된 것이 원인이 되어 주전 494년 페르시아인에게 함락되고 주민은 노예가 되었다. 479년 페르시아 전쟁의 마지막 전투가 있은후 도시가 재건되었다. 그간의 역사적 흐름속에 헬레니즘시대에 이어 로마, 비잔틴, 오스만터어키시대를 거쳐 1920년에 터어키의 영토가 되었다. 그러나 1955년 대지진으로 완전히 폐허가 되었다.

밀레도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야외 원형극장이다. 헬레니즘시대에 세워진 것을 로마시대에 25,000명이 들어 갈 수 있는 대규모 원형극장으로 확장하였다. 당시는 항구도시였기 때문에 바닷가에 야외 원형극장이 위치하여 눈 아래로 바다를 내려다 볼 수 있는 아름다운 경관을 고려하여 세워졌다. 그 외의 유적으로 규모가 엄청난 공중 목욕탕, 유대인 회당, 주전 2세기의 항구 기념비, 스타듐, 아고라, 시장문, 체육관, 이오니아식 석주거리, 미가엘교회 등의 많은 유적과 밀레도 박물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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