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방무역의 활성화로 오리엔트의 풍부한 경험적 지식정보를 받아들이므로 이오니아
자연 철학자를 탄생케 하여 최초의 기하학을 정립한 철학자 탈레스(Thales)를 비롯하여 아낙시만드로스
(Anaximandros), 아낙시메네스(Anaxmenes), 헤카타이오스 (Hekataios)
등 밀레 투스 학파의 철학자를 배출하여 문화의 중심지를 이루었다.
주전 6세기 중엽 페르시아의 지배하에서 번영이 되기는 했으나 주전 499년 이오니아 반란의 중심이
된 것이 원인이 되어 주전 494년 페르시아인에게 함락되고 주민은 노예가 되었다. 479년 페르시아
전쟁의 마지막 전투가 있은후 도시가 재건되었다. 그간의 역사적 흐름속에 헬레니즘시대에 이어 로마,
비잔틴, 오스만터어키시대를 거쳐 1920년에 터어키의 영토가 되었다. 그러나 1955년 대지진으로
완전히 폐허가 되었다.
밀레도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야외 원형극장이다. 헬레니즘시대에 세워진 것을 로마시대에
25,000명이 들어 갈 수 있는 대규모 원형극장으로 확장하였다. 당시는 항구도시였기 때문에 바닷가에
야외 원형극장이 위치하여 눈 아래로 바다를 내려다 볼 수 있는 아름다운 경관을 고려하여 세워졌다.
그 외의 유적으로 규모가 엄청난 공중 목욕탕, 유대인 회당, 주전 2세기의 항구 기념비, 스타듐,
아고라, 시장문, 체육관, 이오니아식 석주거리, 미가엘교회 등의 많은 유적과 밀레도 박물관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