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카이로지역
유물전시관의 1층에는 10만점의 일반 발굴품이, 2층에는 소년왕 투탄카멘의 보물실과 미이라 전시관이 있다. 2층만 관람하는데도 2-4시간 소요된다.
[5] 헬리오폴리스 (HelioPolis)
방첩탑(Obelisk)
성경에 관련된 카이로와의 관계는 요셉으로부터 시작된다. 애굽의 종으로 팔려(주전 1898년-17세)간 요셉은 바로의 꿈을 해몽해 줌으로써 바로로 부터 사브낫바네아(하나님께서 말씀 하심, 유대인들은 비밀을 들어내는자라 함)라는 이름을 받고 총리직(주전 1885년-30세)에 까지 오르게 된다.
요셉은 온(On)이라는 도시의 제사장 보디베라의 딸 아스낫과 결혼을 했다.
온(On)은 당시 고센의 수도였다. 온은 태양신을 섬기던 도시로 신전이 있었으며 그후 희랍인들은 태양의 도시라는 뜻으로 헬리오폴리스(HelioPolis) 라고 불렀다. 그러나 지금의 카이로 북동쪽 카이로 공항 근처에 있는 헬리오폴리스는 옛 온(On) 땅이 아닌 것으로 보고 있다.
모세도 헬리오폴리스에서 주전 1527년에 출생 했다고 전해 오고있다.
최근에 옛 헬리오폴리스는 현재의 엘 마타리아 들판이라고 주장되고 있다. 엘 마타리아는 지금의 헬리오폴리스에서 북서쪽으로 약 5km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엘 마타리아에서 옛 유적을 볼 수가 있다. 제 19왕조 때의 바로인 세티1세의 태양의 신전 터와 제12왕조 때의 바로왕인 세소스트리스1세의 방첨탑(方尖塔, Obelisk)이 옛 헬리오폴리스를 입증해 주고 있다.
사자의 앞발부분, 뒤 꼬리부분 등은 형체를 거의 찾아 볼 수 없고 머리부분이 많이 파손되어 원형을 찾아보기가 힘들다.
그리스 신화에서는 에키도나와 오로트로스의 아들, 또는 라이오스의 딸이라는등 여러 가지의 전설이 있다. 그중에서도 테베(룩소)의 암산 부근에 살면서 지나가는 사람에게 “아침에는 네 다리로, 낮에는 두다리로, 밤에는 세다리로 걷는 짐승이 무엇이냐?”라는 이른바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를 내어 그 수수께끼를 풀지 못한 사람을 잡아 먹었다는 전설은 유명하다.
그러나 오이디프스가 그것은 사람이다. 즉, 사람은 어렸을 때 네 다리로 기고, 자라서 두발로 걷고, 늙어서는 지팡이를 짚어 세다리로 걷기 때문이라고 대답하자 스핑크스는 물속에 몸을 던져 빠져 죽었다고 한다.
 
[4] 국립박물관 (The national Museum)
박물관 전면
카이로에서 성지순례자들이 꼭 들리는 곳은 피라미드와 함께 빼놓을 수 없는 국립박물관이다.
카이로 국립박물관은 주후 1902년에 개관되었다. 이집트는 500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신 왕국이 멸망한 후 1952년 낫세르 장군이 이집트 인민공화국을 세울 때까지 2600년 넘게 외세의 지배를 받아왔다.
그동안 고유의 문자와 언어는 지배자들의 문자와 언어를 사용해 왔기 때문에 그들의 역사는 잊혀져 왔다. 삼폴리옹이 이집트 상형문자를 해독함으로써 갑자기 이집트의 역사가 부각되기 시작했다. 유물의 중요성을 잊고 있던 그들에게 1855년 프랑스 루불박물관 이집트 전시관소속 고고학자 아구스테 마리에테(Auguste Mariete)가 이집트 고고학 감독관으로 부임함으로서 유물을 하나 둘씩 모으기 시작한 것이 현재의 박물관으로 개관되었고, 소장되어 있는 유적 유물품은 12만점이 넘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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