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카이로지역
모세의 우물
최초의 회당은 주전 350년경에 세워졌으며 회당 이름을 예레미아 시나고그라고 불렀다. 그러나 주전 30년에 로마에 의해 파괴되었다. 지금의 회당 입구 정원 쪽의 허물어진 터에는 원래 4세기경 알 무알아카 교회에 소속했던 교회가 있어 9세기경까지 가브리엘교회 또는 미가엘교회로 불렀다.

그후 이슬람 지배하에 들어가게 되면서 엄청난 세금을 콥틱교회에 부과함으로 인하여 세금 지불이 곤란해지자 지금의 회당부지를 이슬람 인에게 매각하기에 이르렀고 이곳에 이슬람 사원이 세워졌다. 그후 12세기에 이븐툴룬 왕조때(주후 868-905년)에 유대인 손으로 다시 넘어오게 되어 유대인 회당이 다시 세워졌다. 이 회당의 이름은 당시 예루살렘의 유명한 랍비 아브라함 벤 에즈라(Abraham Ben Ezra)의 이름으로 명명되어 벤 에즈라 교회라고 부르게 되었다.

이 유대회당은 많은 전설이 전해오고 있다. 회당 뒤편에 보면 우물이 있어 회당 밖의 지하로 들어가면 우물과 연결되어 물이 흐르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나일 강변에 버려진 갈대사이 상자의 모세를 바로의 공주가 물에서 건져낸 곳이 바로 이곳이라는 것이다.(출 2:1-10) 그래서 이 샘은 모세의 샘이라 전해지고 있다. 성모 마리아는 이 지역에 피난 와서 아기예수를 이 샘의 물을 길어 씻겼다고 전해오고 있다.
 
로마시대에 바벨론 성채 밑으로 나일강이 흐르고 있었다는 사실로 보아 모세가 태어날 당시에 유대회당 지역에 나일강이 흐르고 갈대밭이 있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곳은 바로의 별궁지역이라는 항설(巷說)이 있을 수 있다.
또한 모세가 이곳에서 기도를 하고 출애굽 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회당안에 들어가자마자 눈에 띄는 두쪽판의 히브리어로 쓰여진 설화의 내용에 관심을 갖게 된다.
출애굽기 10장 22-23절을 보면 모세가 하늘을 향하여 손을 들매 캄캄한 흑암이 삼일동안 애굽 온땅에 있어서 그 동안은 사람 사람이 서로 볼 수 없으며 자기 처소에서 일어나는 자가 없으되 이스라엘 자손의 거하는 곳에는 광명이 있었다고 기록되어있다.
현재 이 회당에는 토라(Torah)와 탈무드(Talmud) 그리고 시가서(Poetics)가 보존되어 있다.

예레미아는 남유다 왕국의 선지자로 주전 586년에 유다 왕국이 바벨론 에게 멸망되자 애굽으로 끌려와 죽었는데 어느 곳에서 죽었는지 분명치 않으나 이곳에 들렸었고 이곳에서 죽었다는 전설도 있다. 회당주변에 오래된 묘지들이 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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