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알렉산드리아 (Alexandria)

알렉산드리아 역전시장


카이로에서 북서쪽으로 약 220km, 나일삼각주 서단에 위치한 지중해 연안의 국제무역 항구도시로 카이로 다음가는 큰 도시이다. 이집트인들은 알렉산드리아를 아랍어로 이스칸다리야(Iskandariya)라고 부른다.
마케도니야왕 필립 2세가 주전 336년에 암살됨에 따라 그의 아들 알렉산더는 나이 20세에 왕위에 올랐다.
알렉산더는 왕이 된 후 희랍을 비롯하여 페르시아 와 소아시아 전역을 정복하였다. 바벨론에 도읍을 정하고 동쪽으로는 멀리 인도 국경지역까지 진출하였고, 24세가 되는 주전 332년에 이집트를 정복하게 됐다.
알렉산더는 천혜의 항구도시인 라코티스(Rhakotis)를 발견하고 이집트 왕국의 수도로 삼기로 결정했다. 라코티스라 불리던 작은 어촌의 항구는 알렉산더대왕의 이름을 따서 알렉산드리아로 개명하고 대왕의 거대한 도시계획이 그리스의 위대한 건축가인 디노크라테스(Dinocrates)에 의해 설계되었다.
 

마가 기념교회

아주 유명한 학자로는 클레멘트(Clement), 오리겐(Origen),필로(Philo), 아다나시우스(Adanasius) 등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알렉산드리아에서 최초로 히브리어로 기록된 구약성경을 헬라어로 번역한 것이다.
알렉산드리아에는 상업에 종사하는 많은 유대인이 살고 있었지만 그들의 언어인 히브리어를 잊어버리고 당시 국제 공용어인 헬라어를 사용하고 있었다. 따라서 히브리어로 기록된 구약성경을 헬라어로 번역할 필요성이 생기게 되었다. 그리하여 주전 250년경에 번역작업이 이루어졌다.
알렉산드리아에서 70인의 유대인 학자들에 의해 번역되었다고 하여 70인역(LXX)이라고 하며 알렉산드리아 역본(Alexandria Version), 그리고 셉투아진트(Septuagint)라고도 한다. 이 70인역은 기독교 문화를 전세계에 보급하고 복음을 전파하는데 절대적으로 기여했다.

유서깊은 알렉산드리아 해안에서(저자)

또한 알렉산드리아에는 50만권의 장서가 있던 학술원 성격의 무세이온(Mouseion)이라고 하는 세계 최대 도서관에서 기하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유클리드(Euclid),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알고 지구의 둘레를 계산했고 해와 달까지의 거리를 측정한 에라토스테네스(Eratosthenes), 해부학을 연구한 헤로필로스(Herophilos) 같은 저명한 학자들이 가르치며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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