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성 가족의 피난 노정 |
페루지움은 폼페이(Pompey, 주전 106-48년)가 암살된 곳이기도 하다.
폼페이(Gnaeus Pompey)는 로마 말기 주전 70년과 52년 두 차례에 콘술(Consul, 집정관)이 되었다. 그는 오랜 세월동안 로마를 괴롭힌 싸움에서 종지부를 찍게한 장군으로 업적도 높이 평가되었다. 그러나 카이사르(Caesar, 황제)와 대립하던 원로들의 충동으로 카이사르와 싸웠으나 이탈리아에서 쫓기게 되었다. 그 뒤 동방에서 세력을 결집했지만 주전 48년 그리스 북쪽 데살로니카의 도시 파르사루스(Fharsalus)의 회전에서 카이사르에게 대패하여 이집트로 도망가던 중 당시 로마군 사령관 아킬라스(Achillas)와 루시어스 셉티머스(Lucius Septimus)의 두 사람이 폼페이를 페루지움에서 맞이하여 환영하는 척하면서 주전 48년 9월 28일에 암살했다.
성 가족이 오셨을 당시의 페루지움은 바로(Pharaoh)의 궁전이 있었던 곳이며, 매우 중요한 항구도시였다. 예수님은 이곳에서 얼마간 머물러 있었을 것으로 짐작이 간다.
지금은 이곳의 입구 근처에서도 두드러진 유적조차 발견되지 않고 해안을 따라 넓은 사막의 모래밭만 펼쳐져 보인다.
옛 궁전의 한 돌기둥이 안내 표석처럼 세워져 있어 그곳을 따라 들어가 옛 유적의 궁전터를 발견하게 된다.
2000년 전에 옛 궁전이 있었으며 중요한 항구도시였다. 더욱 예수님이 머믈러 계셨던 곳이였다. 그러나 오늘날 광활한 모래밭의 사막으로 변하게한 자연의 힘과 인류역사의 흐름을 통해서 무상함을 느낄수 있는곳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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