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성 가족의 피난 노정
교회내에 보존된 예수님의 족적
교회 안에는 아기 예수님의 오른편 발자국이 있는 바위 돌이 유리상자(Casket : 가로 1m×세로 60cm×폭 60cm)에 보존되어 있다. 그 상자안에 기도 제목의 쪽지를 많이 써서 넣기도 한다.

성 가족은 이곳에서 남서쪽의 광활한 사막의 오아시스에 위치한 와디 엘 나투룬(Wadi el Natrun)으로 이동했다.
[7] 와디 엘 나투룬 (Wadi el Natrun)
마카리우스 수도원교회
와디 엘 나투룬은 사막 가운데 있는 일종의 오아시스이며 약간 저지대에 있는 광활한 사막지역이다. 성 가족은 카프르엘 쉐이크의 사카에서 이곳으로 와서 얼마간 머물러 있었다.
와디 엘 나투룬에 4개의 수도원이 세워진 것은 성 가족의 방문과 관련이 깊다. 이곳에 처음으로 세워진 성 바라무스 수도원(Monastery of St. Baramus)을 비롯하여 성 마카리우스 수도원(Monastery of St. Macarius), 성 비쇼이 수도원(Monastery of Bishoi) 그리고 소리안 수도원(Monatery of Sourian)이 세워져 있다.
알렉산드리아는 이집트 초기 기독교의 중심지로 활발했다. 그러나 주후 6세기경부터 로마제국의 기독교 박해가 극심해지자 알렉산드리아에서 이곳 와디 엘 나투룬으로 피신하여 모여 들게 되었다.
바라무스 수도원교회
소리안 수도원 교회
성 마카리우스(St. Macarius, 주후 300-390년)는 수도원의 창시자인 성 안토니(St. Anthony, 주후 251-355년) 대주교의 제자로써 또 다른 제자인 성 암몬(St. Ammon)의 도움을 받아 나투룬 사막에 수도원을 세웠다.
이곳에 최초로 세운 수도원은 주후 340년에 성 마리아의 이름으로 세워졌으나 로마의 성인 이름을 따서 성 바라무스 수도원이라 불렀다. 성 마카리우스 수도원은 주후 360년 마카리우스의 나이 60세에 세운 수도원으로 그는 이곳에서 죽는날까지 30년동안 수도생활을 하며 제자들을 길러낸 콥틱교회의 성자중 한사람이다.
그가 세상을 떠난 후 유해는 이곳 수도원에 안치되었다.
성 마카리우스는 이곳에 마카리우스 수도원과 바라무스 수도원을 세웠으며 4개의 수도원중 성마카리우스 수도원은 제일 큰 수도원이다.
콥틱교회의 교황은 반드시 수도원에서 수도사 생활을 해야하는데 성 마카리우스 수두원에서 많은 교황이 배출되었다.
성 마카리우스 수도원에는 여러개의 교회가 있는데 성 마카리우스 교회에서 주로 예배의식을 행한다. 이 교회에는 성 마카리우스 유해가 안치되어 있고, 왼편 지하 동굴에 세례요한의 유해와 엘리사의 유해가 발견되어 교회 안쪽에 안치되어 있다.
세례 요한의 유해는 교황 아다나시우스가 20세때에 이스라엘에서 알렉산드리아로 이장했었는데 그후 기독교 박해시 이곳으로 옮겨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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