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는 정치, 경제, 문화, 예술이 아테네를 압도했으며 호화스러운 도시였다. 고린도의 아크로코린투스에 비너스(Venus, 아프로디테) 신전이 세워져 그곳에서 매춘이 이루어졌으며 산성에 무녀가 무려 1,000명이나 되고 부도덕한 행위가 성행하여 “고린도인”이라고 하면 곧 음행과 방탕의 대명사가 되었다.
주전 146년 로마의 뭄미우스(Mummius)장군은 이 도시 전체를 파괴한후 주민들을 추방했다. 그리하여 소수의 주민이 살고 있었다. 그후 100년 동안 재건되지 못한 상태로 유지되었다. 주전 44년 쥴리어스 카이사르(Julius Caesar)는 지정학적으로 군사적, 상업적인 중요성을 인식하여 고린도를 재건하고자 자유민으로 구성된 식민이민단(Colony)을 끌어 들였다. 이때 상인들인 그리스인, 로마 제국의 이방인들, 그리고 유대인들이 많이 모여들었다.
그리하여 고린도는 부흥, 발전하면서 과거와 다름없는 번영된 도시가 되였다. 유대인들은 로마에서 2차에 걸쳐 일시적으로 추방하는 칙령(주전 41년과 19년)에 의해 고린도에 들어와 유대인이 증가되어 공동체를 이루었다.
주전 27년 고린도는 로마속령 아가야(Achaia)지방의 수도가 되었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를 방문한 시기는 로마 황제 글라우디오(Claudius)때 갈리오(Gallio, 주후 51-52년)가 주후 51년 7월 아가야지방의 총독으로 부임한후 고린도에 주재하여 통치하고 있을 때였다.
바울은 아테네를 떠나서 혼자서 고린도를 방문했으며 마케도니아에서 온 실라, 디모데와 얼마후에 합류했다.(행 18: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