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성문
  네 마리의 사자가 꿈에 나타나 먹힐 뻔했는데 그 꿈을 풀이한 학자들이 거룩한 성인 예루살렘을 재건치 않은채 내버려두고 왕만이 좋은 집에 살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래서 왕이 예루살렘 성벽을 수축했고 그것을 기념하기 위해 1540년경 성문을 보수하면서 성문 상단 양쪽에 사자 두 마리씩 네 마리를 부각하였다. 따라서 영어로는 "라이온 게이트", 히브리어로는 "사아르하아라요트"라고 부르고 있다.
기독교인들은 이 성문을 스테반문(St. Stephen's Gate)이라고 부른다. 기독교의 첫 순교자인 스테반이 이 성문 밖 가까운 곳에서 순교를 당했기 때문이다. 이 스테반 문에서 약 200m 남동쪽으로 희랍정교회에 소속되어 있는 스테반 기념교회가 세워져 있다(행 7:54~60, 8:1~2).
아랍인들은 마리아의 문이라고 부른다. 성모 마리아가 태어난 곳이 이 성문 안의 가까운 곳(성 안네교회)이며 마리아의 무덤이 성문 밖 가까운 남동쪽 기드론 골짜기 언덕에 위치하고 있다고 해서이다.
현재도 매년 종려주일에 기독교인들이 종려가지를 들고 벳바게로부터 행진하여 감람산을 넘어 겟세마네 동산을 거쳐 이 성문으로 입성하고 있다. 1920년에 영국군은 자동차가 통행할 수 있도록 개조하였으며 1967년 6일 전쟁시 이스라엘 군인들은 이 성문을 최초 점령하여 예루살렘 성을 용이하게 장악하였다.
[3] 분문(糞門, Dung Gate)
  이 성문은 성벽의 남동쪽에 있는 문으로 힌놈의 골짜기로 통하는 문이다. 예루살렘성 내의 모든 오물이 이 성문을 통해서 힌놈의 골짜기나 기드론 골짜기에 버려졌기 때문에 히브리어로는 "사아르 하아슈포트", 영어로는 덩 게이트(Dung gate, 동물의 똥)에서 연유되어 분문(糞門)이라고 부른다.
이 분문은 여러 시대를 거쳐서 예루살렘성벽이 변동됨에 따라 그 위치가 많이 변했다.
 
제1성전시대와 제2성전시대에 이 문은 실로암못 근방이었다. 느헤미야가 성벽을 시찰하면서 분문에 이르는 동안 보니 예루살렘이 다 무너졌고 성문은 소화되었다(느 2:13). 그 당시 느헤미야가 돌아본 문도 분문이었다.
또한 유다왕 시드기야와 모든 군사가 그들을 보고 도망하되 밤에 동산길로 좇아 "두담샛문"을 통하여 성읍을 벗어나서 아라바로 갔다(렘 39:4)고 했다. 예루살렘이 함락될 때 "두담샛문"이 분문을 말하고 있다.
현재의 분문은 요르단 사람들에 의하여 개조되었다. 1948년에 욥바성문이 이스라엘 군에 의해 봉쇄되자 성벽 안으로 자동차나 많은 사람이 출입할 수 있도록 확장해 만들어진 성문이다.
이 분문은 성내의 성전산, 유대인 지역, 통곡의 벽으로 들어가기에 용이하므로 유대인과 성지순례자들이 많이 출입하는 성문이다.
[4] 시온문(Zion Gate)
 
이 성문은 성벽의 남서쪽에 위치한 문으로 시온산과 통하는 문이라 해서 영어로 시온 게이트(Zion Gate), 히브리어로는 "사아르 시온"이라고 부른다. 아랍인들은 "바브 엔 네비다우드"라고 부르고 있는데 이 문을 통해 시온산에 위치한 다윗왕의 무덤으로 간다고 해서 그렇게 부른다. 이 시온무을 통하여 성문 밖의 다윗의 무덤, 마가의 다락방, 마리아 영면교회를 가게 된다.
[5] 욥바문(Jaffa Gate)
  이 성문은 성벽의 서쪽에 위치한 문으로 지중해연안에 있는 욥바 도시와 통하는 문이라 해서 영어로는 자파 게이트(Jaffa G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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