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예루살렘성 내부지역
당시 예루살렘성벽은 약 60여년 동안에 걸쳐 축성되었는데 최고 14m의 길이와 400톤이나 되는 돌을 비롯하여 평균 1~3톤의 돌을 쌓은 높이 16m의 웅장한 성벽이었다.
예루살렘성이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리우리라(마 24:2)라고 예수께서 예언하신대로 주후 70년 로마에 의해 파괴될 때 지렛대로 돌 위에 돌 하나 남지 않게 무너뜨려졌다.
그러나 성전산 서쪽벽의 총길이는 약 485m였으나 약 60m의 서쪽벽만(지하 17단, 지상 7단)이 지금까지 남아서 당시 이스라엘의 멸망에 대한 역사를 대변해주고있다.
이스라엘이 멸망한 후에 유대인들에게 성전출입이 금지되었으나 일년에 단 한번 성전파괴일인 아브월(양력, 7~8월) 9일만은 하루동안 예루살렘에 출입할 수 있도록 해주었기에 많은 유대인들이 이 서쪽벽 가까운 곳에 모여 성전이 파괴된 것을 슬퍼하며 울었다고 해서 '통곡의 벽'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하시딤
주후 7세기경 회교의 오마르왕은 유대인들이 이곳에서 기도할 수 있도록 허락해주었다. 그때부터 이 서쪽벽은 유대인들에게 가장 거룩한 기도의 장소가 되었다. 유대인들은 성전산에 들어갈 수 없기 때문에 통곡의 벽에 가서 여호와께 그들의 소원을 빌고 또 기도의 제목을 종이쪽지에 써서 벽틈에 끼워두기도 한다.
통곡의 벽 밑의 지역공간을 반으로 나누어 남쪽은 여자들이 기도하고 북쪽은 남자들이 기도하도록 구분되어 있다.
성지답사자들도 기도처에 들어갈 수 있으나 남자는 반드시 머리에 키파(둥근 작은 모자)나 모자를 쓰고 들어가야하며 여자는 어깨와 무릎이 드러나지 않는 옷을 입고 들어가야 한다.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성과 이 통곡의 벽을 되찾은 것은 1967년의 6일전쟁의 승리의 결과이다.
이스라엘 정예공수부대는 완강한 저항을 받으며 구 예루살렘성의 사자문을 6월 7일 10시경 통과하여 입성에 성공했다. 2000여 년 동안 잃었던 예루살렘성을 그날 정오에 완전 점령한 후 이스라엘 병사들은 통곡의 벽에서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통곡의 벽은 디아스포라(Diaspora)의 유대인들에게 잃었던 이스라엘 땅을 되찾겠다는 꿈을 상징하는 성소가 되어 왔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이곳에서 유대인들의 민족적 집회가 열리고 군인들의 선서식도 가진다.
또한 발 미쯔바(Bar Mitzvah)는 오늘날 유대인이 만 13세가 되었을 때 행하는 성년의식으로 이곳에서 성대하게 거행된다. 성년식은 결혼식과 함께 일생중 가장 성대하고 중요한 행사로 여긴다.
뒤로
다음페이지로
페이지 인쇄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