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예루살렘성 내부지역
그후 주전 37년 헤롯은 로마황제로부터 인정받아 왕위에 올라 주전 37~23년에 하스모니아 궁전을 거처로 삼았다가 헤롯궁전을 세우고 그곳으로 옮겼다.
하스모니아 궁전과 헤롯궁전 그리고 안토니 요새는 헤롯 아그립바 1세(주후 37~44) 때까지는 종종 로마총독의 거처로 사용되었다.
성경에 "총독관저"라고 번역된 브라이드리온(막 15:16)은 희랍어로 "프라이토리온"이다.
프라이토리온은 로마총독이 어떤 법률적인 공포나 재판을 행하는 곳을 일반적으로 의미한다.
총독 빌라도 관저는 하스모니아 궁전이나 안토니 요새중 한 곳일 것이라는 주장이다.
첫째, 요세푸스에 의하면 안토니 요새의 내부는 궁전과 같은 모든 규모로 모든 시설이 되어 있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총독의 관저로 기거하는데 불편이 없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안토니 요새는 총독관저라는 주장이 지배적이다.
둘째, 총독이 재판자리에 앉았을 때에 그 아내인 프로클라가 사람을 보내어 꿈에 대한 이야기를 전달했다고 했다(마 27:19). 그러므로 부인과 함께 기거했던 총독관저는 안토니 요새가 아닌 궁전으로 헤롯 궁전보다 하스모니아 궁전에 비중을 두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신빙성이 희박하다.
[8] 안토니 요새(Antony fortress)
  안토니 요새는 예루살렘 대성전의 북서쪽의 성벽 모퉁이에 위치했던 요새로써 원래는 하나넬 망대(렘 31:38)가 자리했던 곳이다.
헤롯대왕이 제2차 성전을 재건할 때 주전 31년, 성전의 북서쪽 성벽을 더욱더 넓고 크게 확장하면서 성전수비대를 위한 안토니 요새를 건축했다.
헤롯은 그의 친구 마가 안토니(Mark Antony)를 기념하기 위하여 안토니요새라 하였으며 4개의 큰 수비탑과 함께 견고한 사각형의 형태로 지어졌다.
안토니요새는 성금요일의 이른 아침에 산헤드린에 의해 고소당한 예수께서 가야바의 집으로부터 이곳에 끌려와서 빌라도 총독에게 재판을 받은 장소이다. 그래서 일명 빌라도 법정이라 한다.
가야바 집터의 건물
(이곳에서 예수님이
안토니요새로 끌려오셨다)
요새의 서쪽에는 돌로 포장된 광장의 박석, 즉 히브리어로 가바다(Gabbatha), 헬라어로는 '리또스트로또스'라고 불리는 곳으로써 로마군인의 훈련과 사열, 그리고 휴식의 장소로 이용되었던 곳이다. 빌라도는 예수님을 끌고 나와서 박석이란 곳에서 재판석에 앉았다고 했는데, 예수님이 박석 위에서 재판을 받은 것이다(요 19:13).
이 안토니요새 안에서 예수님이 조롱을 당하고 사형선고에 처해짐으로써 골고다를 향한 행진이 처음 시작된 곳이다.
또 사도 바울이 유대인들에게 체포되어 성전 밖으로 끌려가자 로마 병정들이 그를 결박하여 "영문 안으로" 데려갔던 그곳이 바로 안토니요새였다. 그곳 층대 위에 서서 바울은 백성들을 향해 히브리 말로 연설을 한 다음 병정들의 호위를 받으면서 가이사랴에 있는 벨릭스총독에게 호송되어 갔다(행 21:27, 23:35).
로마의 티투스 장군은 예루살렘의 북쪽으로부터 공격을 감행하여 주후 70년 7월24일에 예루살렘성을 완전 점령할 때 이 요새는 무너져버렸고 로마군대를 이곳에 주둔시켰다. 현재 이 요새의 벽면을 남겨둔 채 아랍 오마리엘 초등학교(Al Omariyel Primary School)가 위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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