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예루살렘성 내부지역
성묘교회 전경
해골은 히브리말로 골고다(요 19:17)라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으나 골고다는 예수님 당시에 사용하던 아람어이고, 헬라어로는 '크라니온(Kranion)'이며, 라틴어로는 '칼바(Kalva)'인데 연유되어 영어로 '갈바리(Calvary)'라 불리어졌다. 우리말로는 '갈보리'라 부르고 있다.
당시 이곳은 성문 밖의 지역으로 유대인들의 처형장소와 무덤직지이었다. 십자가에서 처형당하신 예수님은 당시 유대의 부자이며 공회의원이었던 아리마대 요셉(Joseph of Arimathea)의 무덤에 안장되었다(눅 23:50~56).
예수님의 장례는 전형적인 유대인의 장례법의 절차에 의해 행해졌다(요 19:40). 유대인의 장례법에 시체는 부정하므로 죽은 후 바로 장례를 치르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안식일에 죽은 시체는 안식일이 지난 후 장례를 치렀다. 예수님의 겨우 안식이리 가까워 오기 때무에 서둘러 장례를 치른 것이다(요 19:31, 눅 23:54).
염한 곳
시체를 향품과 함께 세마포로 싼(요 19:40) 후 아직 사람을 장사한 일이 없는 새 무덤인 바위에 판 무덤에 넣어 두었다(눅 23:53, 요 19:41). 그리고 한 사람이 움직이기에 어려운 큰 돌을 굴려 무덤 문에 막아놓고(마 27:60, 막 16:4) 장례를 끝냈다.
유대인의 전통적인 장례법에 의하면 무덤에 시체를 넣고 밀봉을 한 후 약 6개월 내지 1년의 시간이 지나 시체의 살이 썩어 뼈만 남게 되면 무덤을 열고 들어가 뼈를 모아 돌상자에 넣고 무덤 내의 지정된 다른 방에 쌓아둔다. 그래서 최초 시체를 넣었던 무덤은 계속 사용하게 된다. 예수님의 무덤은 아직 한번도 사용한 적이 없는 새 무덤이었다. 성묘교회의 역사적 배경은 이스라엘 역사와 맥락을 같이 한다.
기독교 신앙의 핵심적인 사건이 일어났던 역사적 현장이 골고다언덕과 예수님의 묻혔던 무덤이다. 바로 이곳은 기독교회의 시작과 함께 가장 거룩한 성지가 되었다.
초대교회 기독교인들은 그 장소를 정확히 기억하였고 그들이 찾아와 기도하는 장소가 되었다. 그러던 중 132~135년에 로마통치에 항거하는 유대인의 2차 반란이 일어났다. 당시 로마제국의 하드리안 황제는 반란을 진압한 뒤 유대인들을 예루살렘에서 추방시켜 버렸다. 그리고 예루살렘을 완전히 로마식 도시로 변형시키고 기독교 유적도 파괴시켜 버렸다. 골고다언덕 위에는 로마인들의 사랑과 미의 여신을 섬기는 비너스(Venus) 신전을 건축하고 성전산에는 쥬피터 신전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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