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예루살렘성 내부지역
그후 200년 후 역사는 완전히 뒤바뀌게 되었다. 콘스탄틴 황제에 의해 기독교가 공인되자 콘스탄틴 황제의 어머니 헬레나는 성지순례 길에 올랐다.
비너스 신전이 세워진 골고다언덕 내의 물저장소에서 예수님이 매다리셨던 나무십자가를 발견하고 아들 콘스탄틴 황제에게 부탁하여 335년에 성묘교회가 세워졌다.
성묘교회가 세워진 지 약 300년 후 페르시아 군대에 의해 예루살렘이 점령되자 파괴(614년)되었다가 재건되었다.
또다시 모슬렘교도들의 아랍인들에게 다시 파괴(1009년) 되었다가 비잔틴 시대에 재건되었다. 그후 1099년 십자군이 예루살렘을 점령하여 50년간에 걸쳐 1149년에 완전히 재건하였다. 오늘날 성묘교회는 십자군시대에 재건된 모습 그대로이다.
현재 성묘교회는 1808년 화재로 많이 파괴된 것을 1868년에 희랍정교회가 복구했으나 이때에 십자군시대의 라틴식 장식이 많이 제거되었다.
그후 1927년의 지진으로 한쪽 부분이 위험성이 있어 1935년에 수리했다. 또한 1949년의 화재로 중앙의 둥근 부분이 파괴되어 1958년에 수리하기 시작하여 현재까지도 계속 수리중이다.
성묘교회의 관리는 여섯 교파가 공동으로 하고 있다. 책임적인 관리는 희랍정교회, 천주교회, 그리고 알메니아교회가 관리하고 작은 교파로는 시리아교회, 애굽콥틱교회, 그리고 에디오피아교회가 속해 있다.
교회의 출입문이 두 개가 있었는데 1187년 아랍 살라딘 장군에 의해 점령된 후 두 개의 문 가운데 동쪽문은 돌로 폐쇄해버렸다. 십자군시대를 지나 회교의 아랍인들이 성묘교회를 장악하면서 교회정문의 열쇠는 지금까지 회교 아랍인들이 소유하고있다. 교회마당의 입구에 들어가면 왼쪽에 회교인 문지기가 앉아있다.
지금의 정문은 두 짝의 큰 대문으로 여닫게 되어 있다.
회교인 문지기가 바깥에서 두 짝의 문을 여닫고, 대문 안에 상주하는 신부들이 대문을 여닫을 수 있도록 하여, 동시에 서로 협력하여 안팎에서 여닫는다.
정문의 두 짝 대문중 오른쪽 문의 하단을 보면 약 40㎝의 정방형의 작은 쪽문이 설치되어 교회 안에서 여닫도록 되어있다. 문이 닫혔을 때 교회 안에서 작은 쪽문을 열고 신부들이 약 2m 높이의 사다리를 밖으로 내보내면 밖에 있던 회교인 문지기가 받아서 사다리를 세우고 정문에 높게 설치된 잠금장치의 자물쇠를 폴고 문을 연다. 그래서 바깥에서나 안에서 일방적으로 정문을 여닫을 수 없도록 되어있다. 사다리는 골고다언덕 층계 하단의 오른편 벽에 항상 세워져 있다.
십자가에 못박히신 곳
(제11지점)
십자가에서 운명하신 곳
(제12지점)
정문에서 들어가면 정면으로 보이는 곳의 바닥에 넓은 침상과 같은 돌판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운명하신 후 몸을 내려 몸에 몰약과 향품을 바르고 세마포로 감아 쌌던 곳이다(요 19:39~40).
정문으로 들어가 오른편 층계로 18계단 올라가면 그곳이 골고다 정상이다. 이 골고다 정상에는 십자가 길의 제10, 11, 12, 13지점이 있다.
제10지점은 정상의 오른편(남쪽) 앞부분으로 예수님을 못박기 위해 옷을 벗긴 장소이다.
제11지점은 정상의 오른편(남쪽) 안쪽부분으로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히신 장소이다(마 2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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