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예루살렘성 외부지역
성벽의 유적
여호수아가 가나안 땅을 정복할 당시에 베냐민에게 분배된 땅이었으나 정복하지 못했다. 그 후 다윗왕이 주전 1000년에 정복하여 이곳에 법궤를 옮기고 수도로 삼았다(삼하 5:6~9, 대상 11:4~7).
다윗이 시온산서을 빼앗으니 이는 다윗성이었다. 다윗이 그 산성에 거하여 다윗성이라 이름하고 밀로에서부터 안으로 성을 둘러쌓았다(삼하 5:7~9).
다윗은 30세에 왕위에 올라 40년간의 통치기간 중에 헤브론에서 3년 6개월, 예루살렘(다윗성)에서 33년 동안 온 이스라엘과 유다를 다스렸다(삼하 5:4~5).
예루살렘성, 다윗성, 그리고 시온성의 3개성은 동일한 한 장소를 의미하기도 하고 때로는 각기 다른 장소를 가리키기도 하여 혼돈이 있을 수 있다.
구약시대에 다윗성을 살렘(창 14:18, 시 76;2), 시온성(삼하 5:7) 또는 예루살렘성(수 10:1)이라 불렀다. 그 후 하스모니아 시대에는 잠깐 동안 성전이 있는 모리아산만을 다윗성 또는 시온성이라 하고 그 외의 성 전체를 예루살렘성이라 구분하여 불렀다.
주후 4세기경부터는 현재 다윗 무덤이 있는 시온산을 다윗성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러나 현재는 일반적으로 다윗성이라고 하면 다윗 시대의 옛 다윗성을 말하고 시온성은 예루살렘성 남서쪽 시온문 밖의 시온산을 말한다.
여부스시대의 성벽과 주전 8세기경 유다왕국의 성벽이 기혼샘 서북쪽 언덕 위에 일부 남아있고 그 높은 지대에 느헤미야가 쌓은 성벽의 탑이 있다.
다윗성 내에는 다윗시대의 무덤으로 보이는 묘실들이 있다.
다윗, 솔로몬, 르호보함이 열조와 함께 다윗성에 장사되었다(왕상 2:10, 11:43, 14:31). 그 후에도 많은 왕들이 다윗성에 장사되었다. 그리하여 이 지역을 왕들의 무덤이라 불렀다.
현재 시온산에 있는 다윗왕의 무덤은 주후 12세기경부터 그곳에 위치한 상태로 전해지고 있다.
다윗성은 본래 유일한 물 근원인 기혼 샘이 성 밖에 위치하고 있으며 성안의 실로암 연못으로 물을 끌어들인 히스기야 터널이 있다.
[18] 히스기야 터널 (Hezekiah's Tunnel)
 
히스기야 터널 평면도
옛 다윗성의 동쪽 기드론 골짜기에 있는 샘이 기혼 샘이다. 기혼이란 “넘쳐흐르다”라는 뜻이다.
현재에 샘의 입구에서 층계로 내려가면 물이 솟아 터널을 통해 흐른다. 이 기혼 샘은 솔로몬이 기름부음을 받고 왕이 된 곳이다.
기혼샘
솔로몬을 다윗왕의 노새에 태우고 인도하여 기혼으로 가서 제사장 사독이 성막 가운데서 기름 뿔을 가져다가 솔로몬에게 기름을 부으니 이에 양각을 불고 모든 백성이 솔로몬왕 만세를 불렀다(왕상 1:38-39).
기혼 샘물을 남쪽으로 끌어내는 수로가 있었다(사 8:6). 옛 수로는 기드론 골짜기 기슭의 성벽 바깥쪽으로 나 있었고 임금의 동산에 물을 대는데 사용된 수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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