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예루살렘성 외부지역
히스기야 터널에서 발견된 비문
히스기야왕(주전 727~698년)은 앗수르의 산헤립의 침략에 대비하기 위한 대책으로 적에게 성 밖의 기혼샘물의 사용을 거부하고 성 안으로 기혼샘물을 끌어들여 성이 포위될지라도 장기적으로 물을 사용할 수 있도록 기혼샘에서 실로암못까지 터널의 수로를 뚫었다(대하 32:30). 이 수로를 ‘히스기야 터널’이라고 부른다.
1880년 히스기야 터널 안에서 놀고 있던 아랍 소년이 비문을 발견하였다. 소년은 그의 선생인 시크(Schik) 박사에게 알렸고 시크박사는 이것이 수로에 관한 기록임을 알게 되었다. 이 귀중한 비문은 여섯 줄의 고대 히브리어로 적혀 있었고 현재 터키 이스탄불 고고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1906년 영국군 파커대위가 터널 전체를 조사하였고, 빈센트 신부의 터널 촬영 결과 발표로 히스기야 터널의 실체가 세상에 완전히 드러났다.
물 근원의 기혼 샘에서부터 실로암 연못까지 터널 길이는 533m, 직선거리는 320m이다. 터널은 석공들이 구멍을 뚫는 방식으로 양편에서 서로 만날 수 있도록 파 들어가 약 3규빗(약 1.3m)이 남아 있을 때 벽의 갈라진 틈으로 상대편 석공의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를 듣고 성공적으로 관통시켰다.
지금도 기혼샘물이 솟아 거의 무릎 높이로 흐르고 있어 겨울의 우기에는 수량이 많고 건기에는 줄어든다.
이 터널을 통과하려면 기혼샘에서 출발하여 실로암 못까지 걸어서 약 30~40분이 소요되며 반바지를 입고 가벼운 신발을 신고 손전등으로 밝히며 통과할 수 있다.
실로암은 “보냄을 받았다”는 뜻이며 실로암 못의 옛 이름은 배수관이라는 뜻을 지닌 “실로아”이다(사 8:5~7).
실로암 못
당시 실로암 못의 크기는 장이 16m이며 광이 5.4m였다. 실로암은 옛 못인 윗 못과 터널의 종착지점인 아랫 못이 있었다(사 22:9~11). 유다왕 아하스가 이사야 선지자를 만났던 윗못(사 7:3)을 통상 실로암 못으로 불렀다. 실로암 못 위에는 망대가 있었으나 무너져 치어 죽은 사람이 열 여덟 사람이나 되었다(눅 13:4).
예수님께서 날 때부터 소경 된 사람을 보시고 땅에 침을 뱉아 진흙을 이겨 그의 눈에 바르고 실로암에 가서 씻으라고 해서 눈을 뜨게 한 이적을 나타낸 곳이다(요 9:6~7).
[19] 시온산 (Mt. Zion)
  시온(Zion)이란 어원을 알 수 없으나 “봉우리”란 뜻을 가지고 있다.
구약시대에 옛 다윗성을 시온성이라 불렀고 하스모니아시대에는 모리아산을 잠시 동안 시온성 또는 다윗성이라고 부르고 그 외의 성 전체를 예루살렘성이라 구분하여 불렀다. 주후 4세기경부터는 형재 다윗왕의 무덕이 있는 시온산을 다윗성이라 부르기도 했다. 오늘날 시온산(해발 765m)은 시온문 밖의 예루살렘성 남서쪽 지역을 말한다.
시온은 “거룩한 산”, “여호와의 산”으로 불렸고 시적인 표현으로 흔히 시온이라 불렀다(시 2:6, 9:11, 24:3). 또한 ‘시온의 딸’이란 말은 예루살렘 시민을 시적으로 표현한 것이다(시 9:4, 사 1:8, 아 3:11, 슥 2:10).
신약시대에 시온은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도성의 상징적 용어로 사용되었다(요 14:1, 히 12:22). 또한 시온에 거한 나의 백성(사 10:24), 시온에 거하는 하나님(요 4:17, 시 20:3) 등에 관련된 시온산은 이스라엘의 신앙적 상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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