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갈릴리 주변지역
  솔로몬 마굿간 옆에 수로 터널로 들어가는 입구가 있다. 아합왕은 므깃도의 급수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지하터널을 만들었다. 므깃도에는 원래 지하 10m지점에서 솟아나는 샘이 하나밖에 없었다. 그런데 지하샘이 성밖의 언덕 기슭에 있었던 것이다. 평시에는 문제가 없는데 적에게 포위 당할 경우에도 물공급을 받을 수 있도록 성안으로 지하터널을 만든 것이다. 그래서 아합왕은 암석지대를 굴착하여 지하터널을 만들어 물을 끌어들였다.
지표면에서 땅 밑으로 약 35m 내려가서 지하 수평터널 약 70m를 지나면 물근원의 샘에 도착하게 된다.
오늘날 중동지역의 분쟁은 구약시대의 연속선상에 있다. 4차에 걸친 중동전쟁이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간에 테러와 분쟁은 끊임없다.
이스라엘을 둘러싸 포위하고 있는 나라는 이집트, 요르단, 시리아, 레바논 그리고 2중 포위하고 있는 나라는 이란, 이라크, 사우디아라비아 등 아랍국가들이다. 이들 국가들은 구약시대의 애굽, 암몬, 모압, 앗수르, 바벨론, 바사 등의 나라와 같다. 중동지역에 평화가 정착되어 가는 듯 보이지만 언제 평화가 깨어져 마지막 날이 도래할지 아무도 모른다. 오직 하나님만이 아신다. 그러한 뜻에서 므깃도는 마지막 전쟁의 상징적 장소가 되고 있다.
[17] 하 솔 (Hazor)
  갈릴리 바다에서 북쪽으로 약 20km, 단(Dan)에서 남쪽으로 약 40km지점, 므깃도와 연결되어 해변길의 통로에 위치한 곳으로 주위의 평지보다 약 40m 높은 언덕위에 형성된 이스라엘에서 가장 큰 성읍이었다.
이곳은 정치적, 군사적, 경제적으로 중요한 요충지였으나 지금은 폐허가 되어 유적만 남아 있다.
하솔은 주전 3000년경부터 도시가 형성되어 20회 이상 도시가 건설되었다가 파괴되었다.
하솔성은 남쪽의 윗성과 북쪽의 약간 낮고 넓은 아랫성으로 구분되는데 성경에는 주로 윗성에 관련되어 있다. 주전 18-13세기에 가나안시대에 가장 번창하여 아랫성과 윗성의 넓은 지역의 전부를 점유했었다.

성경의 기록에 본래 그 모든 나라의 머리였더니 그때에 여호수아가 돌아와 그 왕을 칼로 쳐 죽이고 성읍을 불살랐다.(수 11:10-11) 하솔을 모든 나라의 머리라고 부르기까지 했다.
하솔왕 야빈과 그 군대장관 시스라가 철병거 9백승으로 20년동안 이스라엘을 심히 괴롭혔다. 그때에 여선지자 드보라와 군대장관 바락이 이스르엘 계곡에서 야빈의 군사를 진멸시켰다.(삿 4:1-16)
솔로몬왕은 하솔, 므깃도, 게셀에 견고한 요새의 병거성을 건축했다.(왕상 9:15) 하솔의 솔로몬 성문은 그 구조가 므깃도와 게셀의 것과 같다. 오므리왕(주전 885-855)때에도 하솔을 견고하게 요새화 하였다.
성문 남쪽에 두 개의 돌기둥이 서 있는 곳은 저장실로 사용되었다. 성안의 남쪽 언덕 기슭에 므깃도에 만든 것과 비슷한 원리로 만들어진 지하 수로의 터널이 주목된다. 지하 40m에 있는 물 근원까지 돌을 굴착하여 내려갔다. 입구는 가로가 19m, 세로가15m인 직사각형으로 벽을 따라 회전하여 수직으로 약 30m를 내려가면 동굴의 입구가 나온다. 굴속으로 약 25m 거리에 약 10m 낮은 곳에 물 근원이 있다.

오므리왕때의 성은 약 100년 후인 여로보암 2세(주전 793-753)때에 있었던 지진으로 일부 파괴되었으나 이스라엘 왕 베가(주전 752-732)때에 앗수르왕 디글랏 빌레셀에게 빼앗겼으며 백성들은 앗수르로 끌려갔다.(왕하 12:29) 하솔은 북왕국이 앗수르에게 멸망될때에 파괴되었다.
하솔언덕에서 내려와 길을 건너면 조그마한 하솔 박물관이 키브츠 안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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