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갈릴리 주변지역
[18] 단 (Dan)
 
텔 단의 유적
예루살렘에서 북쪽으로 약 223km 지점, 레바논과의 국경에 가까운 곳이다. 구약시대에도 이스라엘 민족의 땅을 경계지어 말할때에 단에서 브엘세바까지라고 했으며 단은 북쪽의 끝지역으로 언급되었다.(삿 20:1, 삼상 3:20, 삼하 3:10,17:11,24:2)
현재의 단(Dan)에서 북쪽으로 약 2km 지점에 폐허의 유적으로 남아 있는 텔 단(Tel Dan)이 있다. 텔단은 주전 2500년경부터 큰 도시가 형성되었다.
아브라함은 그 조카 롯이 사로 잡혀 갔음을 듣고 집에서 길리고 연습한 자 318인을 거느리고 단까지 쫓아가서 밤에 그들을 쳐서 파하고 다메섹 좌편 호바까지 쫓아가서 모든 빼앗겼던 재물과 자기 조카를 찾아 돌아왔다.(창 14:16)
단이라는 이름은 창세기에 최초로 언급되었으나 본래의 이름은 레센(수 19:47) 또는 라이스(삿 18:29)였다.
주전 19세기 애굽의 문서에서 투트모세 3세에 의해 점령된 도시의 하나로 라이스가 기록되어 있다.
본래 단지파에게 분배된 땅은 남쪽의 지중해 연안에 위치한 소라지역이었다. 그러나 블레셋 침공에 견디지 못하여 이곳 라이스라는 북쪽지방을 점령한 후 정착하면서 지파의 이름을 따라 단이라 불렀다.(수 19:40-46, 삿 18:29)
분열왕국이 시작될 때 북이스라엘의 초대왕 여로보암이 금송아지를 둘 만들어 하나는 벧엘에 하나는 단에 두었다.(왕상 12:25-32) 여로보암은 종교의 중심지로 삼아 성벽을 웅장하게 쌓고 성문과 제단을 만들었다.
그 당시 제단은 아합왕시대와 여로보암 2세 때에 보수되어 로마시대까지 제단으로 사용되었다. 오늘날 유적 가운데 제단의 일부가 남아 있다.
유다의 아사왕(주전 908-867)때에 앗수르의 벤하닷에 의해 파괴되었다가 아합왕때 재건되기도 했지만 주전 732년 앗수르의 디글랏 빌레셋의 침공때와 이스라엘이 멸망될 때 완전히 파괴된 것으로 여겨진다.(왕상 15:20, 왕하 15:29)
단은 헬몬산 밑에 가까워 풍부한 물을 공급 받을 수 있는 수원의 지역이다.
요단강이라는 이름도 단에서 부터 비롯되었다. “단에서 부터 흐른다”는 말의 뜻으로 히브리어로 요레드단() 이라고 한다. 이 말에 연유되어 요르단(Jordan)으로 부르게 되면서 요단강의 이름이 되었다.
[19] 가아사랴 빌립보 (Caesarea Philippi)
  텔 단(Tel Dan)으로부터 동쪽으로 약 4km지점, 이스라엘 최북단의 헬몬산 남서쪽 기슭에 자리잡고 있는 오늘날 바니야스(Banyas)라고 부르는 곳이다.
구약성경에는 한번도 기록된바 없으며 신약에서 단 두 번밖에 언급되지 않았다.(마 16:13, 막 8:27)

바니야스는 텔 단과 함께 헬몬산에서 나오는 풍부한 물 근원(초당 20m3분출)이 되고 레바논에서 나오는 세너의 물과 합류, 주요 수원이 되어 북요단강을 통해 갈릴리 호수로 흘러 들어간다.
이 지역은 주전 2세기초에 시리아의 셀루시드왕조(Seleucids)가 애굽의 프톨레미(Ptolemy)왕조로 부터 빼앗은 땅이다.
가나안 시대에는 바알신전이 있던 곳이었으나 희랍시대에는 “목자들의 신”인 판신(Pan god)을 섬기던 곳으로 이 지역을 파니야스(Paneas)라 불렀다. 그러나 아랍인들이 프(P) 발음을 하지 못하여 바니야스라고 부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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