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요단계곡지역
 
사해사본이 발견된 동굴
쿰란이 유명하게 된 것은 1947년 2월 동굴에서 쿰란 공동체 사람들이 숨겨 두었던 항아리속에서 “에스더기”만을 제외한 구약의 모든 옛 사본들이 여러종류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더욱 그 사본들은 주전 2세기로부터 주후 1세기에 속하는 사본 들로써 마소라 본문 보다 천년 이상이나 더 옛 것일 뿐아니라 구약 본문이 확정되기 이전의 본문 상태를 반영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발견된 성경 사본을 “사해사본” 또는 “쿰란사본”이라고 부른다.
이 사본이 질그릇 항아리 속에 약 2,000년이상 보관되어 왔어도 썩거나 많이 훼손되지 않은 것은 사해 주변의 건조한 기후의 영향이었다.
사해사본의 최초 발견된 경위는 다음과 같다. 1947년 2월 쿰란 광야에서 베두인의 한 소년이 잃어버린 양을 찾고 있었다. 어느 동굴 안으로 양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하여 돌을 던졌을 때 그릇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쿰란에서 발견된 성경사본
그 소리를 듣고 호기심을 가지고 들어가서 8개의 항아리를 발견한 것이다.
그곳에는 아마포(亞麻布)에 잘 싸인 가죽 두루마리가 들어있는 항아리(높이 65-75cm, 지름 25cm정도)가 있었다. 그 얼마후 베들레헴 골동품상인 칸도(Kando)에게 넘어가 여러 골동품상인을 거친후 그 항아리에 들어있던 두루마리중 4개를 시리아의 예루살렘 정교회 대주교 마르아타나시우스 사무엘이 샀으며 나머지 3개는 베들레헴의 아랍상인으로부터 예루살렘 히브리 대학교 “수케닉”(Sukenik) 교수가 구입했다.
수케닉 교수가 1953년 사망한 후 이스라엘 군 총사령관을 지낸 그의 아들 “야딘”(Yadin) 은 아버지의 대를 이어 교수이자, 고고학자가 되어 1954년 사무엘 대주교로 부터 4개의 두루마리를 사들였고 1967년에 1개의 두루마리를 추가 구입하여 총 8개의 사해 사본 두루마리를 보유했었다 그러나 그 사본들은 현재 이스라엘 국립 박물관의 성서의 전당에 보존되어 있다.

사해사본의 중요성은 발견된 후 오늘날까지 높이 평가되고 있다.
오늘날 성경의 원본은 남아있지 않고 필사한 사본만이 남아 있는데 사해사본이 발견되기 이전까지는 주후 10세기 때의 사본이 가장 오래된 사본이었다. 그러나 쿰란에서 주전 2-1세기경의 지금부터 약 2000년전의 최고의 사본이 발견된 것이다. 그중에서 가장 귀중한 것은 이사야서 66권 전권으로 길이가 72m, 너비가 25.9cm의 두루마리이다.
그 외에도 하박국서 주석, 훈련교본, 빛의 자녀와 어둠의 자녀사이의 싸움, 감사찬송, 외경창세기등이 많이 발견 되었다.

1948년 이스라엘의 독립전쟁으로 동굴 조사작업이 중단되었고, 1949년 2월 15일부터 3월 5일 사이에 요르단의 고고학자 R.드보에 의해 발굴 조사되어 이때 성경의 사본과 외경 그리고 700점이상의 여러 문서가 발견되었다. 그후 1951-1956년까지 6년간 고고학자들은 쿰란 주변 11개의 동굴에서 약 800개의 두루마리 책의 일부와 작은 조각들을 발견했다.
쿰란 주위에는 공동묘지 3개와 1,200개의 무덤이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으며, 그중에 50개의 무덤을 발굴했는데 모두가 남자의 무덤이었다.
쿰란의 유적으로는 그들의 주거지역에서 책임자의 방, 성경을 기록하던 방, 정결례 목욕탕, 항아리 빚던 곳, 집회소, 식당, 물저장소, 부엌, 마굿간 등의 공동체를 이루며 생활하던 흔적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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