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요단계곡지역
 

그 후에 헤롯대왕(주전 37-4)은 유대인들이 자신의 왕위를 찬탈할 것을 염려하여 유사시에 대비해 피난할 요새 궁전으로 주전 36년부터 30년에 걸쳐 마련했다. 요새의 북쪽 끝의 절벽부분에 3층 궁전을 계단식으로 지었다. 이 궁전은 아주 호화스러운 별궁으로 건축기술의 걸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헤롯은 요새와 궁전을 더욱 안전하게 하기 위해 정상부분에 약 1,300m의 성벽을 둘러쌓고 망대를 38개나 건설 했다. 성벽 안에는 병사, 병기고, 저수장, 곡식창고, 목욕탕 등 각종 건물을 만들었다. 또한 만일의 경우 외부에서 식량을 들여올수 없을때를 대비하여 성안에 경작지를 남겨 놓았다 그러나 헤롯왕때에는 마사다 요새를 유사시에 사용할 기회는 없었다.
헤롯이 죽은 후 주후 66년 유대인들은 로마제국 통치에 반대하는 반란을 일으켰다.
 
마사다 전경
5년이나 계속된 반란으로 말미암아 주후 70년 8월 로마의 티투스(Titus)장군이 예루살렘을 점령하고 성전을 완전히 파괴하였다. 예루살렘이 로마군대에 점령될 때까지 저항하던 유대인의 열심당원(Zealots)은 예루살렘을 빠져나와 헤로디움과 사해 일대로 피신하여 계속 저항했다.
이때에 엘리아살 벤 야일(Eleazar ben Yair)을 지도자로 한 열심당원은 마사다 요새에 올라가 진을 치고 저항을 계속했다. 예루살렘이 함락된지 2년이 지난 주후 72년 가을 로마 실바(Silva)장군이 이끄는 제10군단의 군사들이 마사다에 도착했다. 마사다 정상의 요새성을 공격 하기 위하여 로마군 9,000명과 유대인 포로 6,000명을 이용하여 마사다 주변에 8개의 램프(Ramp)를 설치하여 정상높이 가까이 까지 토담경사로를 만드는데 성공했다.

로마식 목욕탕
주후 73년 4월 서쪽편의 토담경사로를 타고 올라간 로마군사는 성벽을 향해 횃불을 던져 손쉽게 불이 붙어 무섭게 타오르기 시작 했다. 처음에 북풍이 불어 로마군 쪽으로 불길이 휩싸여 타격을 받았다. 그러나 이런 상황이 갑자기 돌변하여 바람의 방향이 남쪽으로 바뀌어 불기시작하자 성벽은 걷잡을수 없이 불길에 휩싸이고 말았다 로마군은 전세가 호전되었으나 날이 저물자 다음날 총 공세를 취하기로 하고 퇴각했다.
그 날 저녁 유대인지도자 벤 야일은 960명의 유대인 열심당원을 모아놓고 마지막 연설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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