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요단계곡지역
 
로마군이 쌓아올린
공격용 토성 경사로(Ramp)
그 연설의 요지는 다음과 같았다 “나의 고결한 동포들이여! 우리는 오래전 부터 결코 로마인들의 노예는 되지 않겠다고 굳게 맹세 했습니다 우리는 참되시며 공의로우신 만인의 하나님 외에는 그 누구에게도 굴복하지 않기로 거듭 다짐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그같은 각오를 실천에 옮길때가 다가 왔습니다 결코 노예가 되지 않겠다고 맹세한 우리가 목숨이 아깝다는 이유로 로마인의 노예가 될 수는 없습니다.
나는 자유로운 상태에서 스스로 용감하게 죽을수 있다는 능력이 아직 우리에게 남아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은총이라고 생각 합니다. 우리가 로마군에게 함락되는 것은 시간문제이며 하루를 넘기지 못할 것 같습니다. 우리의 아내들이 능욕당하고 더럽혀 지기전에 죽게 하고, 우리의 자녀들이 노예가 되기전에 세상을 떠나게 합시다.
우리가 먼저 처자식을 죽인 다음 우리도 서로 영광스러운 죽음을 죽게 합시다. 이렇게 자유를 누리면서 세상을 떠나는 것이 우리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영광스러운 기념비가 될것이기 때문입니다.
식량에는 손대지 말고 그냥 남겨 둡시다 우리가 자결한 것은 식량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초지일관하여 노예가 되느니 차라리 죽음을 택하겠다는 자유의 열망 때문이었다는 사실을 만방에 과시 하도록 합시다. 우리모두 서둘러 용감하게 죽도록 합시다”라는 지도자의 애절한 설득이자 호소였다. 이 연설을 듣고 처음에는 당황하고 의아스럽게 생각 했지만 모든 사람이 공감하게 되어 다같이 죽음의 길을 택하기로 결심했다
다음날 새벽 마사다 정상에 다시 침투한 로마군사는 아무 저항 없이 정적이 감도는 가운데 무혈 점령을 하게 됐다. 그때 상황은 3년간 완강하게 저항하던 열심당원들이 모두 자결한 후였기 때문이었다.
  역사가 요세푸스에 의하면 로마군대가 마사다를 함낙시켰을 때 지하동굴에 숨어있던 2명의 여자(노인)와 5명의 어린아이들은 대학살을 모면하여 후세에 증언을 했다. 그들이 목숨을 끊은 때가 주후 73년 4월 15일 저녁이었다.
헤롯왕이 비축해 놓았던 10,000명의 병사가 사용하고도 남을 정도의 무기가 있었으며, 식량이 없어 죽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로마군인에게 보이기 위하여 식량창고 한 두 개를 태우지 않고 보존해 두었다.
유대인들은 마사다 항전을 끝으로 로마의 핍박을 피하여 전 세계로 흩어지는 디아스포라(Diaspora)가 되었다.
주후 110년까지 로마군이 이곳에 주둔하였고 비잔틴시대에는 기독교 수도자들이 살면서 교회를 세우기도 했다.
로마군이 쏘아올린 공격용 돌(직경 약 30-40cm)
이곳은 1963-65년에 히브리대학교의 고고학자 야딘(Yadin)교수의 지휘아래 발굴되어 그 시대의 유물이 밝혀졌다.
하스모니아시대의 성벽과 도시, 헤롯대왕시대의 걸작인 궁전과 화려한 목욕탕 그리고 저항하면서 만든 성벽과 물탱크, 회당 그리고 두루마리 사본 등이 확인되었다.
오늘의 마사다는 유대인들이 힘이 약해서 죽음으로 항거할 수 밖에 없었던 비극의 역사가 다시는 되풀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이스라엘 민족의 굳은 결의를 다짐하는 곳이다.
또한 이곳은 이스라엘의 젊은 병사들에게 애국 애족의 강인한 이스라엘 특유의 항전 불패의 군인정신을 함양하는 도장으로써 이스라엘 군인들의 마지막 훌련과정에서 군대의식을 행할때에 “마사다는 이제 두 번 다시 함락되지 않는다”는 구호를 선언하고 있다.
마사다 정상에 올라가기 위해서는 케이불카를 이용 하거나 로마시대부터 만들어져 있는 뱀처럼 꾸불꾸불하고 협착한 길이라서 이름이 붙여진 뱀길(Snake Part)을 따라 올라갈 수 있으며 도보로 약 40분이 소요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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