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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가 요세푸스에 의하면 로마군대가 마사다를 함낙시켰을 때 지하동굴에 숨어있던 2명의 여자(노인)와 5명의 어린아이들은 대학살을 모면하여 후세에 증언을 했다. 그들이 목숨을 끊은 때가 주후 73년 4월 15일 저녁이었다.
헤롯왕이 비축해 놓았던 10,000명의 병사가 사용하고도 남을 정도의 무기가 있었으며, 식량이 없어 죽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로마군인에게 보이기 위하여 식량창고 한 두 개를 태우지 않고 보존해 두었다.
유대인들은 마사다 항전을 끝으로 로마의 핍박을 피하여 전 세계로 흩어지는 디아스포라(Diaspora)가 되었다.
주후 110년까지 로마군이 이곳에 주둔하였고 비잔틴시대에는 기독교 수도자들이 살면서 교회를 세우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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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군이 쏘아올린 공격용 돌(직경 약 30-40cm) |
이곳은 1963-65년에 히브리대학교의 고고학자 야딘(Yadin)교수의 지휘아래 발굴되어 그 시대의 유물이 밝혀졌다.
하스모니아시대의 성벽과 도시, 헤롯대왕시대의 걸작인 궁전과 화려한 목욕탕 그리고 저항하면서 만든 성벽과 물탱크, 회당 그리고 두루마리 사본 등이 확인되었다.
오늘의 마사다는 유대인들이 힘이 약해서 죽음으로 항거할 수 밖에 없었던 비극의 역사가 다시는 되풀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이스라엘 민족의 굳은 결의를 다짐하는 곳이다.
또한 이곳은 이스라엘의 젊은 병사들에게 애국 애족의 강인한 이스라엘 특유의 항전 불패의 군인정신을 함양하는 도장으로써 이스라엘 군인들의 마지막 훌련과정에서 군대의식을 행할때에 “마사다는 이제 두 번 다시 함락되지 않는다”는 구호를 선언하고 있다.
마사다 정상에 올라가기 위해서는 케이불카를 이용 하거나 로마시대부터 만들어져 있는 뱀처럼 꾸불꾸불하고 협착한 길이라서 이름이 붙여진 뱀길(Snake Part)을 따라 올라갈 수 있으며 도보로 약 40분이 소요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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