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바티칸 시국
  신전(神殿)은 로마에 최고의 신인 유피테르(주피터) 신전이 주전 509년 카피톨 언덕에 세워져 예로부터 집정관이 취임하면 우선 이 신전에 참배했으며 전쟁에 로마의 승리를 가져다주는 수호신으로 생각하고 원정에서 돌아오면 장군의 개선 행렬이 이 신전으로 향하였다.
로마시내 곳곳에 비너스와 로마의 신전, 트라야누스 신전, 복수의 신 마르스의 신전, 클라우디우스 신전 등이 세워졌으며 아우구스투스 황제때 크고 작은 신전이 82개나 되었다고 한다.
콜로세움(Colosseum)은 원형 대경기장이다 콜로세움의 명칭은 “거대한 건축물”이라는 뜻으로 근처에 네로 황제의 거상(Colossus, 巨像)이 있었는데서 유래 되었다.
이 경기장은 주후70년에 베스파시아누스(Vespasianus) 황제가 착공하여 주후 80년 그의 아들 티투스(Titus, 재위 79-81년)때에 완성되었다. 직경의 긴 쪽은 188m, 짧은 쪽은 156m, 둘레는 527m의 타원형이고 외벽은 높이 48m로 4층이며 하단으로부터 도리아식, 이오니아식, 콘크리트식의 원추가 아치를 끼고 들어서 있다. 관객은 약 50,000명을 수용한다.
이곳은 고대 로마에서 죄수들에게 잔인한 사형장으로 활용했던 곳이다. 21세기에 접어들어 유엔, 이탈리아, 로마시, 교황청평화단체인 에디지오, 바티칸, 국제사면위원회등은 전세계 사형반대운동의 일환으로 원형경기장인 콜로세움울 적극 활용하면서 사형 반대운동의 메카가 되었다.
전세계에서 사형수의 형집행이 면제될 때마다 콜로세움을 비추는 기존의 백색불빛을 금색으로 바꾸어 48시간 동안 원형경기장을 밝히는 행사를 하고 있다.
대서커스장(Circus Maximus)은 팔라티누스 언덕 아래 있는 모든 건축물중 가장 큰 것이며 약 150,000명의 관중이 수용된다. 이곳에서 마차 경주가 가장 인기 있는 경기종목이며 누가 이길 것인지 도박을 하는 일이 흔했다. 또 짐승과 목숨을 걸고 싸우는 검투 경기도 있었다.
글라우디오 황제 때는 1년에 159일이 휴일이었으며 그 중에 93일은 경기에 몰두했다고 한다.
공공광장과 원주(圓柱)가 많이 건축되었는데 트라이야누스를 비롯한 6명의 황제가 자기의 위대함을 기념하는 높은 원주를 세우고 자기 이름을 딴 공공 광장을 많이 만들었다.
수로(水路)는 콘크리트로 만들어져 거대한 아치로 받쳐서 로마의 많은 지역에 물을 공급해 주었다.
공중 목욕탕은 카라칼라(Caracalla) 황제가 건축한 것은 그 규모가 길이 337m, 폭이 320m 되었으나 지금은 오페라와 음악 공연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아우구스투스 황제때에 무료의 많은 공중 목욕탕이 170개나 있었으며 1세기말에는 1,000여개 정도였다고 한다. 정교한 목욕탕은 온탕, 냉탕, 증기탕, 도서관이 있으며 심지어 남자와 여자가 같이 들어가는 혼탕도 있었다고 한다.

카타콤
카타콤(Catacombs)은 기독교인들에게 관심이 가는 곳이다. 초기 기독교인의 지하 묘지로 나폴리, 시라쿠사, 몰타, 아프리카, 소아시아, 이집트 등의 여러 지방에서 볼 수 있다. 카타콤은 원래 그리스어 “카타콤베”로, “낮은 지대의 모퉁이”를 뜻한다.
로마 아피아가도에 면한 성 세바스찬의 묘지가 두 언덕 사이에 있었기 때문에 3세기에 이 묘지의 위치를 표시하기 위하여 이 이름이 사용되었다. 중세기만해도 지하 묘지로서 알려진 것은 이 묘지뿐이었다.
16세기초에 기독교인의 지하묘지가 발견된 후부터 모든 지하묘지를 카타콤이라 부르게 되었다. 이와 같이 지하 묘지를 두는 풍습은 동방에서 전래되었으나 기독교에 대한 박해가 심해지면서 지하묘지의 풍습이 더욱 성행한 것으로 짐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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