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성 바울 순교 기념교회
 
시내산에서 만난 배두인

멜리데 섬에서 바울이 독사에 물렸으나 아무렇지도 않았으며 추장 보블리오의 부친이 열병과 이질에 걸려 누웠을 때 바울이 기도하고 안수하여 낫게 하매 다른 병든 사람들도 와서 고침을 받고 바울에게 호감을 갖게 되었다.

이 섬에서 겨울을 나고 섬사람들과 작별한후 알렉산드리아 선편에 다시 올랐다. 시실리섬의 “수라구사항”과 “레기온항”을 거쳐 “보디올항”에 상륙하여 이곳에서 일주일 머문 후 로마에서 “압비오”와 “삼관”까지 맞으러 나온 형제들과 함께 하나님께 감사하며 “로마”에 당도했다.(행 28:1-31) 바울이 2년간을 자기 셋집에 유하며 자기에게 오는 사람을 다 영접하고 담대히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께 관한 것을 가르치되 금하는 사람이 없었다.(행 28:30-31) 사도행전에는 바울의 로마에서 2년의 연금 생활이후에 대하여는 기록이 없다. 로마서에 보면 로마를 방문한 후에 서바나(에스파니아)로 가려는 의도를 밝히고 있다.(롬 15:28) 그리하여 적어도 2년은 그곳에서 보냈을 것으로 보여진다.
두 번째로 투옥되었을 때는 마메르틴(Mamertin)감옥에 갇히는 몸이 되었다. 이 음침한 감옥은 아직도 존재하고 있으며 바울이 그곳에 감금되기 100년 전에 정치범을 가두기 위해 만들어진 곳이었다.
네로(Nero, 재위 주후 54-68년)는 64년의 그 유명한 화재로 로마의 4분의 1이 파괴 되자 기독교인들에게 책임을 뒤집어 씌우며 대학살을 감행 했다 그로 인하여 바울은 네로가 즉위한지 13년 되던 해인 67년에 그리스도의 복음을 인하여 로마에서 참수형을 당했다. 그는 순교하여 오스땡 도로 곁에 매장되었다.

바울은 참수형(斬首刑)을 당하여 머리가 땅에 떨어지는 그 순간에 바울의 머리는 세 번이나 위로 솟구쳤다.
그의 머리가 솟구쳐 떨어지는 장소마다 샘물이 솟아났으며 처음에 떨어진 장소에는 뜨거운 물, 두 번째 떨어진 장소에는 따뜻한 물, 그리고 마지막으로 떨어진 장소에는 차가운 물이 흘러 나왔다고 한다. 그 장소를 기념하여 “세 가지 샘물”이 솟는 장소라는 의미를 지닌 트레 폰타나(Tre Fontana)라는 이름의 바울 순교 기념 교회(성당)가 세워졌다.
지금도 그곳에 샘물이 솟아나고 있는데 내려오는 이야기와 달리 지금은 온도의 차이를 느낄 수 없다.
사도 바울이 참수 당했다고 전해지는 곳은 로마 서쪽 성문 밖 5km 지점, 오스땡도로 위에 벽 없는 바울 교회(성당)가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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