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에베소
사도요한 무덤
그런데 요한계시록의 일곱교회 중 에베소 교회는 어느 곳의 교회일까 하는 것이다. 요한계시록이 기록될 당시에 교회가 있었다는 것은 사실인데 오늘날 분명치 않다. 그러나 요한의 무덤이 있는 지역에 교회가 있었을 것으로 보며, 요한교회의 유적을 당연히 7교회 중 하나로 취급되어 지는 것이다.
[2] 성모 마리아가 거처했던 집
  오늘날 옛 에베소에는 성모 마리아교회의 유적이 남아 있다. 주후 431년 데오도시우스2세가 소집한 종교회의로 3차 공회의가 소집되었던 장소로 추정된다. 당시 그리스도의 품격에 대한 신학문제로 양성(신성과 인성)에 대한 논란이 있었다. 에베소 공회의를 통하여 양성을 인정하는 니케아 신조가 재확인 되었다.
성모 마리아 교회의 유적
옛 에베소의 유적을 돌아보고 누가의 무덤에서 출발하여 고갯길을 따라 파나야 카풀루(Panaya Kapulu) 산을 넘어가면 그 산 속에 비잔틴시대에 지어진 성모 마리아의 집이라고 전해지는 작은 교회가 있다. 마리아의 집 입구에 터어키 한인회에서 안내 표지판을 세워 놓았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성모 마리아의 집
「이곳은 성모 마리아께서 당신 생애의 마지막 해를 보내셨던 곳이다. 요한 복음에 의하면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운명 하기전에 요한을 가리키며 말씀하시기를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다시 마리아를 가리키며 요한에게 말씀하시기를 “보라 네 어머니라”(요한복음 19:26-27)
 
성모 마리아의 집
그리하여 요한은 성모 마리아와 함께 에베소로 오게 되어 에베소 3차 종교회의록에 기록되어 있기를 요한이 성모 마리아에게 산 위에 집 한 채를 지어 드렸다고 하였는데 세월이 흐름에 따라 집의 장소는 잊혀지고 폐허가 되었다. 주후 1878년 케더린 에머리히(Catherine Emmerich)라고 하는 독일 수녀가 꿈속에서 계시를 받은 내용을 “성모 마리아의 생애”라는 제목으로 펴냈는데 이 책 속에 성모 마리아의 집 위치가 기록되어 있었다. 이 수녀는 자기가 태어난 고장을 한 번도 떠난 적이 없었으므로 1891년 나자렛 신부가 탐사반을 조직하여 오늘날의 성모 마리아의 집을 발견하게 되었는데 집의 모양은 케더린이 계시 받아 기록한 모습과 정확히 일치하였다. 100년 전까지만 해도 그리이스 정교도들이 해마다 8월 15일(마리아 승천일)에 이 집에서 순례 행사를 가졌었다.
1961년 교황 요한 23세는 성모 마리아의 집의 위치에 대한 분쟁을 종식시키고 이곳을 성지로 공식 선포했다”
( 터어키 한인회 )

현재 카톨릭교회와 그리스 정교회의 성지 순레자들은 에베소에 오면 이곳을 꼭 찾는다. 현재 예루살렘의 시온산에 마리아의 영면교회가 있고 기드론 골짜기의 겟세마네 동산 하록에 마리아 무덤교회가 있다.
그러나 에베소에서 마리아 무덤이 발견된 적은 없지만 고고학자들의 증언에 의하면 에베소에서 거처하던 집에 무덤이 있었다고 한다. 예루살렘이 로마의 통치하에 혼란이 거듭되고 있던 시대 상황으로 보아 성모 마리아가 예루살렘에 거처하기가 곤란했을 것으로 보여진다. 그러므로 요한과 함께 에베소에서 말년을 보내다가 죽은후 이곳에 묻혔다는 주장을 무조건 배제할 수는 없다.

앞으로
다음페이지로
 
페이지 인쇄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