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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서머나는 주후 170년대에 대지진으로 크게 파괴된 후 여러번 지진으로 서머나의 영광은 사라지고 땅속에 묻혀 버렸다. 1930대 이후 고고학자들의 발굴작업이 계속되었다.
그 유적으로 2만명 이상을 수용할 수 있는 야외 원형극장을 비롯하여 운동 경기장, 로마식 공동 목욕탕, 대규모 아고라 등을 볼 수 있다.
초대 교회인 서머나 교회는 사도바울의 3차 전도여행시 그에 의해 세워졌다는 주장이 유력하다.
폴리갑(Polycarp)은 서머나 교회의 감독으로 오래 있었다. 오늘날 서머나 교회는 순교한 폴리갑의 기념교회로 도심지에 세워져 있다.
폴리갑은 기독교의 핍박이 심할때마다 로마 총독에게 끌려갔다. 황제를 주(主)라고 고백하도록 강요당했다. 그러나 단호히 거부했다. 야외경기장에 끌려 가서 많은 군중이 모여 있는 가운데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그리스도를 비난하고 모른다고 하라. 그러면 내가 너를 놓아주리라”했다. 그러나 폴리갑은 대답하기를 “내가 86년간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고 믿어 왔는데 그 분은 나에게 아무 피해도 주지 않았으며 하물며 나의 주인이시며, 왕이요, 구세주이신 그분을 어떻게 배반할 수 있겠는가”라고 했다. 그들의 집요한 강요를 끝까지 거부했다. 죽기까지 충성한 이 존경할만한 폴리갑은 주후 155년 빌라델비아의 성도 11명과 함께 불에 타 순교했다.
요한계시록에 서머나교회는 빌라델비아교회와 더불어 책망이 없던 교회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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